북한 학생들은 해마다 10월이면 3일에서 5일 정도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하거나 솔방울을 채집한다. 이를 지역에 따라 '나무방학' '솔방울 채집' 또는 '화목 동원'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3학년(10세)부터 중·고등학교 3학년(14세)까지는 솔방울을 채집하고, 중·고등학교 4학년부터는 산에서 직접 나무를 베고, 그것으로 장작을 만들어 교실마다 쌓아둔다.
A씨(회령 출신자)에 따르면 당시 담임선생님 집이 학교 근처에 있어 그 학급만 해마다 장작을 선생님 집에 쌓아두었다. 이 학급은 나무 잘하기로 학교에 소문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교실의 땔감뿐만 아니라 본인 집에서 사용할 양까지 챙기려 했기 때문이다.
보통 학생들은 땔감을 구하기 위해 학교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산으로 간다. 아침에 집에서 도시락을 챙겨 출발하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을 꼬박 걸어 산에 도착한다. 자전거 있는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걸어 다닌다.
또한 부잣집 친구들은 산에 직접 가지 않고 시장에서 나무를 사기도 한다. 집에 돈이 있어도 시장에 가지 않고 산에 가는 친구들이 있다. 그 이유는 또래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운 수다와 산을 뛰어다닌 후에 먹는 도시락이 별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걸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주제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나이 어린 친구들은 외국 영화 이야기를 좋아한다. 북한 당국에 걸리면 처벌받는 영화들이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할 때에는 영화 제목과 외국 영화라는 말은 쏙 빼고 스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듣고 있는 아이들도 대충 외국 영화라는 것을 눈치로 알아채지만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이다.
A씨는 그때 나눴던 이야기 중 지금도 기억하는 영화 이야기는 '조로'(1978, 이탈리아·프랑스)라고 하였다. 당시는 영화 제목과 제작한 국가를 몰랐지만 나중에 한국에서 찾아보니 조로였다고 했다.
10대 후반 고학년 아이들은 서로 관심 있는 이성 이야기에서부터 주변에서 연애하는 친구들 이야기, "○○가 △△랑 손을 잡았대!" "□□가 ▽▽를 좋아하는 것 같아!" 등 이야기에 까르르 웃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 아이들은 2차 성징기를 겪고 있어 월경과 같은 새로운 경험을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나누기보다 또래들과 이야기하길 선호한다. 걸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는 하나의 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인 관점에서 보면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으로 겨울철 땔감을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 학생들은 이 시기가 되면 큰 불만 없이 '화목 동원'에 참여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화목 동원' 자체를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맺는 유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성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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