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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전환점 앞둔 LG와 SK의 '배터리 전쟁'… 美 ITC 최종 판정 시나리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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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 침해 여부 및 수입금지 조치 수위에 따라
양사간 합의 급물살 또는 장기화 가능성
영업비밀 침해 인정되면 조단위 합의금에 무게
한국일보

LG와 SK 로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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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 넘게 벌여온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에 주요 분수령이 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감지된 분위기를 감안할 때 2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ITC 마지막 판정에 앞서 양 사의 극적인 합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초, 지난해 4월 영업 비밀 침해로 불거진 양 사의 대립은 올해 2월 ITC에서 "영업비밀 침해 행위가 이뤄졌으며 조직적으로 소송 증거들을 인멸했다"며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예비판정을 내릴 때까지만 해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랬던 양측의 기류는 배상액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를 확인한 SK이노베이션에서 "끝까지 가보자"며 강경 노선으로 선회, 급변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ITC의 최종 결정이 임박하면서 양 사의 향후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TC 판정의 경우엔 양사 '배터리 전쟁'을 봉합할 배상금 규모 설정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해외 사업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영업비밀 침해를 통해 생산한 배터리와 관련된 모든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할 수 있어서다. ITC에 SK이노베이션의 미국내 배터리 사업 존속 여부가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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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판정과 관련, 예상된 경우의 수는 크게 3가지다. 먼저 2월 예비판정을 인용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0일 이내에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 제품의 미국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은 내년 완공 예정인 3조원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생산 공장 건설부터 차질이 불가피하다. 만약 수입금지 조치가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0년 이후 ITC에서 완료된 600건의 소송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1건에 그쳤다.

두 번째는 ITC에서 예비판정을 인용하되, 수입금지의 판단 기준인 공익과 관련해선 별도 공청회 등을 활용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미 소송 과정에서 양사의 고객사 및 공장을 유치한 주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은 ITC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포드사는 "배터리 공급업체가 변경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게되고, 미국의 일자리는 물론 공중보건과 환경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제조를 막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 공장이 위치한 미국 오하이오주의 마이크 드와인 주지사도 "LG화학이 오하이오 주에 10억 달러 이상 투입해 공장을 짓고 수천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SK이노베이션과의 불공정 경쟁에서 구제하지 않으면 이 같은 투자는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번째는 ITC가 예비판정을 뒤집고 수정 지시를 내리는 경우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조사하고 최종 판결이 나오게 된다. 이 경우 양사간 소송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재조사 후에도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미국 연방법원 등에서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당장 발목을 잡고 있던 미국 사업의 걸림돌이 사라져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선 ITC의 예비 판정이 뒤집힌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예비판정 인용을 전제로 한 합의금 규모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양 사의 배상액 간극은 최소 1조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구체적으로 어떤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 없이 거액의 합의금을 주면 경영진과 이사회가 배임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LG화학 측은 "영업비밀 침해 리스트는 공개만 하지 않았을 뿐 법률 대리인과 재판부는 이미 다 갖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 측은 패소 시 피해 규모 등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배상액이 얼마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이와 관련, 올해 2월 미국 법원은 모토로라와 중국 하이테라 간 무전기 영업비밀 소송에서 전직자를 통한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약 9,200억원(7억6,500만 달러)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바 있다. 미국의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탈취한 영업비밀을 활용한 수주금액, 연구개발(R&D) 절감 비용 등 부당 이득, 미래 가치 등을 고려해 산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모두 앞으로 공장 건설 등 배터리 사업에 막대한 투자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므로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LG와 덜 주려는 SK의 공방이 첨예했던 것"이라며 "ITC 최종 결정 이후엔 교착 상태인 양측의 협상이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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