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코로나블루’ 넘어 ‘코로나레드’···韓도 美도 40%가 위험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리즈]'코로나 섬'에 갇힌 인류②

韓 10명 중 4명 "코로나 블루 경험"

美 40% "정신이나 행동 문제 겪어"

日 극단 선택 급증, 실업 등 원인

유럽 "봉쇄 반대" 시위, 분노 커져

'코로나 블루' 이어 '코로나 레드'

"감염병 방역 넘어 심리 방역 필요"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43‧여)씨는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2~3일은 내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 지난여름부터 우울감이 심해지더니 불면증까지 생겼다. 여행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자가 될 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과 가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걱정도 크다. 재택근무와 휴교로 양육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정신과 진료를 고민하고 있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개월 넘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점점 인류의 마음마저 감염시키고 있다. 고립과 단절,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Blue)’를 넘어 우울과 불안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는 ‘코로나 레드(Red)'를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2차 확산세가 뚜렷한 유럽에선 곳곳에서 이동 제한 조치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감염의 공포만큼이나 봉쇄와 단절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방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차 확산 당시 봉쇄 조치를 경험해 본 시민들이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것만큼이나 자유 제한 상황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 두렵다’고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앙일보

지난 18일 체코 프라하에서 시민들이 이동 제한 조치 등 정부의 코로나 방역 지침에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 18일 체코 프라하에서 이동 제한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곽 교수는 “이처럼 코로나19가 초래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면서 “코로나 블루‧레드의 정도가 심해져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른바 '코로나 블랙(Black)'으로 번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국민 10명 중 4명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20~65세 성인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 14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50.7%)의 경험 비율이 남성(34.2%)보다 높았다.

지난 1월 29일부터 지난 9월 14일까지 보건복지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서 이뤄진 코로나 블루 관련 상담 건수는 44만8867건으로, 이미 지난 한 해 복지부 정신건강 복지센터의 우울증 상담 전체 건수(34만3185건)를 훌쩍 뛰어넘었다.

중앙일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동 제한 조치에 항의하는 사람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달 25일 프랑스 마르세유 거리에서 자영업자 등 시민들이 이동 제한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유행에 국가별 사정도 비슷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4~5월 전 세계 112개국 18~29세 젊은이 1만2000명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4%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미국인의 경우 40.9%가 코로나로 인해 적어도 하나의 정신 혹은 행동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성인 547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더욱이 “지난 30일 동안 진지하게 극단 선택을 고려한 적이 있나”란 질문에는 응답자의 10.7%가 “그렇다” 답했다.

영국 통계청이 지난 8월 조사한 결과 영국 성인 5명 중 1명이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 10명 중 1명이 우울 증상을 보인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배나 상승했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우울감이 분노로 또 극단적인 심리 상태로 치닫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연구팀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2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정보와 뉴스를 접하고 주로 느끼는 감정’을 조사했다. 그 결과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은 8월 6~9일 62.7%에서 8월 25~28일 47.5%로 15.2%포인트 줄었으나 ‘분노’라고 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 11.5%에서 25.3%로 13.8%포인트 증가했다.

일본에선 지난 8월 극단 선택을 한 사람의 수가 1854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7% 늘었다. 특히 1854명 중 여성이 651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0.3%나 증가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실업과 경기 악화가 주요 배경으로 지목되는데, 특히 비정규직이 많은 여성의 타격이 컸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

지난 6월 독일 시민 200여 명이 오랜 봉쇄령에 반발해 폭동을 벌여 슈투트가르트의 상점 유리창문이 깨졌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동훈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집단 문화가 강해 방역 지침을 잘 준수하는 만큼 단절과 고립에서 오는 정신 건강 위협도 클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정신건강 문제가 점차 사회 문제로 발현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영국에선 이미 아이들이 코로나19 유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어린이 단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에머슨 크리스만(10)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친구를 보지 못해 정말 힘들다. 10살에게 친구는 거의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사라 빈슨 모어하우스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평소 아이들이 조언을 구했던 부모‧교수‧멘토들도 겪어보지 못한 팬데믹이란 점이 문제”라 말했다.

중앙일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영국의 한 어린이.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곽금주 교수는 “현재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라면서 “상황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면, 자신의 마음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가을‧겨울 내가 방역 지침을 잘 지킨다면, 내년 봄엔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며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몸을 움직여야 줄일 수 있다”면서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야외에서 걷기 등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빈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연구과장은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한다면 국가 운영 정신건강 복지센터 등의 상담 도움을 받는 식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석경민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