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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발언이 남긴 과제…검찰 ‘정치적 독립’과 ‘민주적 통제’의 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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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윤석열 검찰총장이 23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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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역’ ‘중상모략’ ‘부하’ ‘장관이 친구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고받던 거친 말폭탄은 지난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화려하게 터지며 주목을 끌었다. 국감 중계방송 합계 시청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국감은 두 사람의 갈등이 정쟁의 소재가 된 현상만 두드러지게 보여줬다. 정치권력이 장악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검찰 권한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반면, 건설적 해법은 논의되지 못했다.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윤 총장의 말이었다. 라임 사건과 가족 관련 수사에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를 한 것을 겨냥했다. 윤 총장은 ‘준사법기관’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정부의 개입으로 해석한 반면, 여권은 이 발언을 검찰이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부하’란 말을 의전상 상하관계나 인사 등 일반적 사무에서 지휘를 받는 관계라고 해석하면 검찰총장을 법무장관 아래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총장이 장관 명령을 일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존재는 아니며 이 관점에서는 윤 총장 발언이 꼭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견해도 많다.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무관할에 있어서는 준사법기관으로 분류되며,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 관청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라면서도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면서, 동시에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규정이다. 장관이 인사·감찰권을 쥐고 총장을 통해 개입하되 개별 사건에 대해선 검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이 때문에 지방검사장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은 검찰의 정권 예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당은 총장에게 수많은 첩보보고가 올라가는 것을 우려했다. 이 경우 보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한중 한국외대 교수는 “총장이 사건에 대해 지휘할 필요도 있고, 지휘를 전제하려면 보고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감에서도 여당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옵티머스 사건을 무혐의 처분해 피해가 커졌다며 당시 지검장이던 윤 총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따졌지만 윤 총장은 “부장검사 전결사안이라 (보고 받지 못해) 수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좀 더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정 교수는 “이번 국감을 보니, 그런 (첩보)보고를 너무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일선 검사에 대한 대검의 통제가 심해질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이 독립성을 내세우면서 ‘준사법기관’으로서 지위만 주장하는 것에는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소극적으로 기소되기를 기다렸다가 사건을 심리하는 사법부와 달리 검찰은 적극적으로 사건을 찾고 수사를 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행정기관”이라며 “검찰이 준사법기관의 지위를 가지려면 검사가 법에 규정돼 있는 객관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한국 검찰은 민사소송의 당사자처럼 움직이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법규에 규정된 총장의 권한이 논란이 되는 것은 검찰의 권력 자체가 비대한 데다 잘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수사권과 경찰 수사지휘권을 모두 갖고 있으며, 기소권은 독점한다. 정한중 교수는 “총장의 권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검찰이 직접수사를 너무 많이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총장과 장관 모두 법에 규정된 권한을 자제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이 검찰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총장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면서 이런 측면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바람직한 검찰개혁과 검찰의 상을 잡기 위한 정책적 방향에서 국감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전무했다. 마치 윤 총장 인사청문회 같았다”고 평했다. 그는 “내년 시행을 앞둔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점검이라도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윤 총장과 여당 의원들이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형사사법제도의 근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는 점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인사기구 등을 만들어 유신시대·5공 때 만들어진, 검찰총장에게 권력이 집중된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를 21세기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하·이보라·허진무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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