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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때에도 삼성 위기의식 가졌던 이건희"-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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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이건희 회장 별세]

머니투데이

/사진=뉴욕타임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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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삼성 이건희 회장 78세로 별세. 전자 거대기업 만들었다'는 제목으로 속보를 실었다.

NYT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서울에서 78세로 별세했다"면서 "그는 삼성을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칩에서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1987년 아버지이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별세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삼성을 할인점에서 파는 값싼 텔레비전과 신뢰도 낮은 전자레인지를 만드는 회사로만 알고 있었다"면서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기술 수준을 계속적으로 높였다. 1990년대초 삼성은 일본과 미국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메모리칩 최강자가 됐다. 화면이 가벼워지면서 평면 디스플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2000년대 휴대폰이 강력한 컴퓨터 장치가 되면서 중급 및 고급 모바일 시장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NYT는 삼성전자가 오늘날 한국경제의 초석(cornerstone)이며, 세계에서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고 했다. 또 1987~1989년 삼성그룹 회장을 지냈고 1998~2008년 삼성전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2010년부터 별세까지 삼성전자 회장을 지낸 이 회장은 한국의 최고 부자였다고 했다.

NYT는 그와 그의 가족들은 거미줄처럼 엮인 소유권을 통해 삼성그룹 아래 다른 회사들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서, 전문경영인들도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거대한 사상가이자 거시 전략방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재벌'로 알려진 한국의 가족 사업이 그들의 영향력을 보호하는 가끔은 의심스러운 방법들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썼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과일과 건어물 수출로 삼성을 설립한 이병철과 박두을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레슬링 선수였다.

삼성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이 필요로 했던 설탕, 섬유 등 소비재 산업을 지배하면서 처음 성장했다. 이후 보험, 조선, 건설, 반도체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 회장은 1965년 도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고, 조지워싱턴대 석사과정을 공부했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다.

1966년 당시 삼성 계열사인 동양방송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건설 및 무역 회사인 삼성물산에서 일했다.

NYY는 "1987년 그가 회장이 됐을 때, 심지어 시대가 좋아 보이던 시기에도 그는 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착했다. 오늘날까지 삼성 수뇌부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살아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그의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했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에 있다"면서 "자본 집약적이고 기술 집약적인 산업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후 취임 5주년째인 1993년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2류 근성을 뿌리째 뽑아내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자식과 마누라 빼고 모두 바꿔보자"고 일갈했고, 삼성은 이후 양 위주에서 질을 앞세운 신경영에 나섰다. 또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인재 영입에 나섰다.

삼성은 2000년대 들어 화려한 기기와 세련된 마케팅을 통해 서구 소비자들의 마음에 삼성의 이름을 확고히 심어주는 등 글로벌 정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포츠카와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다.

2007년까지 그는 다가오는 삼성의 위기를 확인했다. 중국은 저가 제조업을 잘하고 있었고 일본과 서구는 여전히 선진 기술을 이끌고 있었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 기업들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한편 NYT는 이 회장이 "화이트칼라 범죄로 두 번 유죄판결을 받았고 두 번 사면받았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매체는 "그가 삼성의 경영 방식에 대한 다음번 점검에 착수하면서, 비밀 계좌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십억달러에 대한 세금을 회피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그는 이 혐의와 싸우는 대신 생방송으로 사임을 발표해 한국을 놀라게 했다"고 썼다.

그는 2008년 직원들에게 "삼성이 일등기업으로 인정받는 그날은 영광과 결실이 모두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라고 20년 전 약속했다"며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듬해 사면됐고, 2010년 다시 삼성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4년 심장마비 이후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사를 대표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왔다고 NYT는 전했다.

황시영 기자 app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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