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3662501 0012020102563662501 08 0805001 6.2.0-RELEASE 1 경향신문 0 false true false false 1603628040000 1603628287000

‘예쁜꼬마선충’의 놀라운 질병 진단 능력 [신경과학 저널클럽]

글자크기
[경향신문]

경향신문
코로나19가 국내외에서 다시 기승을 부린다. 가벼운 몸살이나 감기처럼 환절기가 되면 으레 찾아오는 병치레에도 이젠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분자진단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하루 정도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하루가 주는 불안감이 만만치가 않다. 두뇌가 몸에 침입한 병원체의 유전적 정체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예쁜꼬마선충’이라고 하는 작은 선형동물은 자신에게 배탈을 일으킬 수 있는 박테리아를 분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예쁜꼬마선충은 우리와 여러 중요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1㎜ 정도 크기의 벌레로, 유전학을 위시해 신경과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원래 흙 속에 살지만 실험실에서는 접시 위의 작은 서식공간인 ‘한천 배지’ 위에서도 배양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흙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배지 위에서 자라는 박테리아를 찾아가 먹이로 삼는데, 박테리아 중에는 ‘슈도모나스 에루지노사’(Pseudomonas aeruginosa·PA14)처럼 맛은 좋아 보이지만 선충에게 배탈을 일으키는 병원균도 있다. 그래서 선충은 PA14를 발견하면 처음에는 다가가서 이 박테리아를 맛보지만, 이내 배탈이 나서 PA14 박테리아를 피해야 한다는 걸 배운다.

병원성 박테리아를 회피하는 행동의 학습은 여러 과학자들의 흥미를 자극해 왔는데, 콜린 머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사람은 피해야 할 음식을 가려낼 때 냄새나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판단을 하는데, 예쁜꼬마선충이 PA14의 어떤 신호를 바탕으로 회피 행동을 학습하는지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머피 교수팀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이 PA14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유전정보에 직접적으로 반응한다는 신기한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PA14에 포함된 특정한 화학적 성분이 선충에게 학습된 회피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가정하고, PA14의 구성 성분을 각각 분리해 선충에게 제시했다. 그 결과 PA14가 가지고 있는 RNA, 그중에서도 200개 염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RNA들이 회피 반응 학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알아냈다. 머피 교수팀에서는 PA14가 발현하는 여러 RNA 중 어떤 것이 회피 반응 학습에 중요한지 알아봤다. PA14 박테리아는 25도에서 배양하면 독성을 가지지만, 14도에서는 독성이 없는 상태로 자란다. 이 점에 착안해 25도에서 배양한 PA14에 특이적으로 많이 발현하는 작은 RNA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았더니 ‘P11’이라고 하는 130개 염기 크기의 RNA가 필요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 규명됐다. 이것이 장에서 흡수돼 여러 단계의 생화학적 기구와 조직 간의 정보 전달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의 PA14에 대한 회피 행동을 완성하게 된다.

예쁜꼬마선충과 우리는 많은 중요한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아쉽게도 병균의 유전정보를 직접 알아내는 능력은 공유하지 못했다. 앞으로 수백만년, 어쩌면 수천만년 우리가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분자진단 감각능력을 가지는 신인류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가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그보다 빨리 찾아내 굳이 그런 능력은 없어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뇌·인지과학전공 교수

▶ 인터랙티브:난 어떤 동학개미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