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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계의 삼성' 그뒤엔 남보다 5년 멀리 봤던 '이건희의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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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이건희 회장 별세] 그는 누구인가]


사진으로 본 '재계 거인'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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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의 시작을 알리는 1라인을 1984년 5월에 준공한 모습. 고 이병철 선대 회장(앞줄 왼쪽 3번째)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회장(앞줄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보이는 사람)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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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식에서 당시 입사일이 가장 빨랐던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으로부터 삼성 사기를 받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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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식에서 당시 입사일이 가장 빨랐던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으로부터 삼성 사기를 받아든 이건희 회장(왼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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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기말적 변혁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며 신경영 강연 중인 모습.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 일화도 여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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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기말적 변혁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며 신경영 강연 중인 모습.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 일화도 여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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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12일 삼성서울병원 건설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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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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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삼성 사장단을 불러 밀라노 전략회의를 열었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디자인경영 등을 강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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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당시 삼성 특검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경영쇄신안을 발표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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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는 모습. 왼쪽부터 (당시 직급 기준)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 사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CEO),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COO), 윤주화 사장(CFO), 정칠희 부사장(반도체연구소장) 등. 이 회장은 2010년 3월24일자로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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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을 위해 서초동에 있는 삼성 사옥을 처음으로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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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강원도 평창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후보지 IOC 조사평가단장 구닐라 린드버그와 현장을 둘러본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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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2' 전시장을 방문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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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홍라희 여사와 함께 삼성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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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삼성 신년 하례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해 5월, 이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2020년 10월25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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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삼성 신년 하례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해 5월, 이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2020년 10월25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성은 기자


미래 내다보는 탁월한 능력…360조 기업 일군 '이건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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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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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향년 78세로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42년 1월9일 경남 의령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회장(이하 이 회장)은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이 회장이 여섯 살 무렵 서울 혜화동으로 이사하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됐다. 이후 6.25 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부산 사범 부속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6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수료했다.

◇말수 적고 조용한 학생…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탁월'

이 회장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는 게 주변 전언이다. 반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해박한 지식과 독창적 논리로 주변을 놀라게 했단 후문이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뛰어든 것은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다. 1968년 12월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을 맡았다. 이듬해 1979년 2월 삼성그룹 부회장을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은 항상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경영인으로 기억된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된 신경영 선포가 대표적인 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혁신을 독려했고 "단 한 개의 불량제품을 만드는 것도 회사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자 경영의 범죄행위"라며 양이 아닌 질 위주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도 이 회장이다.

이 선언 이후 이 회장의 주재 해외 간담회는 68일간 이어졌다. 런던,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를 오가며 사장단을 대상으로 800시간동안 1800여 명의 임직원에게 350시간을 직접 강의 '삼성의 미래'를 역설했다. 디자인 경영과 여성인력 활용도 함께 주문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삼성 고위 관계자는 "정말 그 당시에는 이 회장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5년 정도가 지난 이후에 기업 환경이나 세상이 이 회장이 얘기했던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역전문가 제도나 입사서류 심사를 폐지한 열린 채용, 여성공채 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 발상이었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다른 기업들이 삼성이 어떻게 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대로 따라하는 형태가 반복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은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강조했다.

1994년 삼성의료원을 설립, 3시간을 기다려서 3분 진료를 받는 현실을 바꿔 놨다. 특히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웠던 영안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지금의 장례문화가 정착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같은 해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삼성 임직원들은 헌혈캠페인, 창립기념자원봉사대축제, 자원봉사대축제, 연말이웃사랑캠페인 등 4대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포츠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2018 평창 올림픽 개최에도 '기여'

이 회장은 스포츠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서울대사대부고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며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비인기종목인 레슬링을 한국 금메달 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1996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은 아픈 몸을 이끌고 2009년 시작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섰다. 1년 반 동안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이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 5바퀴 돌고도 남는다.

이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기려 호암상을 제정, 기초학문과 사회봉사 정신이 널리 퍼지도록 하는데도 앞장섰다. 호암상은 1990년 제정된 이후 학술·예술 및 인류 복지증진에 크게 공헌한 인사들을 기리고 있다.

경영인으로서의 이 회장의 능력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1993년 시가총액 2~3조원 규모였던 삼성전자는 불과 2년 만인 1995년 시총 10조원을 넘겼다. 2004년 4월13일 처음으로 시총 100조원을 돌파했고 2012년 3월 시총 200조원 시대를 열었으며 2020년 10월23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359조원이다.

김성은 기자


여성·혁신·동반성장·녹색산업…미래 내다본 이건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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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향년 78세 일기로 타계한 가운데 삼성 그룹을 명실상부 재계 1순위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어온 그가 남긴 '말의 유산'도 재조명되고 있다.

◇다음은 고인이 된 이 회장의 주요 어록





"다시 한 번 바꿔야 합니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2014년 1월 신년사)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합니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

"도전하고 또 도전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더 멀리 보면서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아내야 합니다." (2013년 1월 신년사)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 기업의 모습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부단히 성장하는 기업, 늘 활력이 샘솟는 창의적인 기업, 고객과 주주는 물론 국민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입니다." (2012년 11월 취임 25주년 기념식)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와 나라의 손해입니다. 우수한 후배들에게 삼성에 와서 일하라고 말해주기 바랍니다.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고 열심히 하고, 정확히 보고 뛰면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2012년 4월 여성 승진자 오찬)

"기업 문화를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혁신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는 삼성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기를 당부 드립니다." (2012년 1월 신년사)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기꺼이 협력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1년 1월 신년사)

"지난 30년간 협력업체를 챙겨왔지만 그 단계가 2, 3차로 복잡해지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2,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좀 더 무겁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챙길 겁니다. 동반성장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를 만들어가도록 할 겁니다." (2010년 9월 청와대 조찬 간담회)

"환경 보전과 에너지 고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도 녹색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입니다" (2010년 5월 신수종사업 투자계획 발표)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뽑아서 실업 해소에도 더 노력해주십시오." (2010년 5월 신수종사업 투자계획 발표)

"지금이 진짜 위기입니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집니다. 삼성도 어찌 될 지 모릅니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겁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앞만 보고 갑시다." (2010년 3월 경영복귀)

"세계 초일류 기업이 바로 우리가 이뤄야 할 진정한 미래입니다.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나 기쁨과 보람은 고난 속에서 꽃을 피우며 진정한 일류 기업은 불황에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 다시 한번 힘을 모아 힘차게 미래로 나갑시다"(2005년 1월 신년사)

"이익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02년 5월 삼성인력개발원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

"기업 디자인은 상품의 겉모습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합니다." (1996년 1월 신년사)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겁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1987년 12월 삼성전자 회장 취임사)

김성은 기자


'혁신의 별' 고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며[오동희의 思見

재계의 거목이자 한국 사회의 큰 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삼성을 전 세계 기업들 사이에 우뚝 세우고(建: 세울 건), 그 사이에서 밝게 빛나게(熙: 빛날 희) 한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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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제공=삼성




70여 년의 세월을 쉼 없이 달리며 꿈꾸던 그는 지난 2014년 5월 10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6년 5개월 15일(2361일)동안 긴 잠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항상 꿈꾸는 혁신가였다.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고 일컫는 일부 평가는 그를 알지 못한 무지의 산물이다. 이 회장은 혁신가이자 고뇌하는 미래학자였다.

이 회장은 자신의 꿈에 대해 워낙 깊이 있게 생각하다 보니 남들과 어울릴 시간이 적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평가는 그렇게 이름 붙여졌지만 그는 기술을 통한 인류의 행복과 미래를 바꾸는 데 관심이 컸던 혁신가이자 도전자다.

고인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수십 번 반복하며 주인공의 입장은 물론, 조연과 단역 각각의 시선에까지 다각도로 입장과 감정을 분석해 입체적 사고를 키웠다. 그는 타인들에게도 이런 다면 사고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87년 호암으로부터 국내 기업 삼성을 물려받은 후 5년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1993년 신경영 선언으로 혁신 의지를 쏟아냈다. 이는 동양의 초라한 싸구려 전자업체를 세계 5위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대중에 노출돼 남들과 시간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졌던 그는 혁신가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반도체와 휴대폰, TV,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삼성을 세계 1위로 올려놓았다.

당장의 손해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한 게 그였다. 500억원어치의 무선전화기를 불태운 것도 혁신의 과정이었다.

그는 기존 고정관념과 잘못된 관행의 틀을 깨는 것도 꺼리지 않았던 시대의 도전자다. 이 회장은 국내 최초로 여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그룹 채용에서 첫 여성공채 시험을 시행했고, 기수 중심의 순혈주의를 파괴하고 능력 중심의 인재경영으로 혁신을 이끌었다.

그는 학연을 배제하고, 고졸 출신도 과감하게 임원으로 승진시켰고, 공채 중심의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우수한 인재는 어떤 대우를 해줘서라도 영입해 삼성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매년 500명씩 전 세계 1위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S급 영재를 영입하도록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S급 인재는 최고경영자(CEO)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고라도 대접해주는 삼성의 문화를 만들었다.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그의 천재경영론은 그가 인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또 단순한 양적 성장을 버리고, 질을 중시하는 품질경영으로의 전환은 원조를 받던 빈국 한국을 이젠 원조를 해주는 부국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필자는 이 회장이 해외출장을 가거나, 출장에서 다녀올 때 공항에서 보거나,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출근할 때 자주 봤다. 볼 때마다 그는 항상 '깊이 생각하고 멀리 보자'는 화두를 던지고 거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의 부릅뜬 눈은 항상 무언가를 강렬하게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선대 호암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경청과 목계(나무로 만든 닭)의 초연함을 잃지 않고, 주변과 소통하고, 흔들림 없는 강건함을 유지한 인물이 바로 이건희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에 눈감지 않고 항상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면모도 간직했다. 삼성 사회봉사단과 삼성 헌혈캠페인, 자원봉사 대축제 같은 다양한 사회공헌은 이런 생각의 결과들이다.

우수 인재를 통한 혁신으로 '인류 행복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혁신가는 이제 후배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도전정신과 혁신의지가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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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선임기자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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