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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던 SK하이닉스 낸드 잔혹사, 이제는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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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톡톡]
2012년부터 낸드솔루션 업체 잇따라 인수했지만 기술 흡수 미미
약 4조 투입한 도시바 지분, ‘컨트롤러 기술’ 확보는 커녕 단순 투자로 변질
SK하이닉스, 인텔 낸드사업 인수로 이번에는 비상할 수 있을까

SK하이닉스(000660)가 최근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일체를 90억달러, 우리돈 약 10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0조면 연간 설비투자 금액과 맞먹는 거액이기 때문이지요.

업계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의 베팅 이유를 인텔이 보유한 컨트롤러 기술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컨트롤러는 낸드를 제어, 데이터를 읽고 쓰고 저장하게 해주는 시스템반도체입니다. 메모리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SK하이닉스 기술력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영역으로 줄곧 지적돼 왔습니다.

그간 낸드는 D램처럼 단품으로 팔렸습니다만, 저장용량을 늘리기 위해 아파트처럼 셀을 수직으로 쌓아올리기 시작하는 이른바 ‘3D(3차원) 낸드 시대’가 열리면서 여기에 장착해야 하는 컨트롤러 기술 개발에도 업체들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노트북·서버 등에 사용되는 대용량 저장장치인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역시 낸드와 컨트롤러, 펌웨어(소프트웨어)의 종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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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클린룸 내부 전경. /SK하이닉스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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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오랜 컨트롤러 기술 투자로 낸드 역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를 받지만, SK하이닉스는 왜 그렇지 못할까요.

"2010년쯤 SK하이닉스가 3D 낸드에 선제적으로 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평면 구조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했던 게 전략적 판단 실수였다고 봅니다."

한 SK하이닉스 전직 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에 큰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란 지적입니다.

실제 SK하이닉스가 3D 낸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말~2017년 초. 낸드 사업부 수석 엔지니어, 공정 헤드, 공장장 등에 D램 핵심 인재들을 대거 투입하며 D램에서의 성공 방정식을 낸드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이미 늦어진 트렌드 따라잡기에만도 버거웠다는 내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태생적인 한계도 있었습니다. 현대전자·LG반도체 합병으로 2001년 문을 연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D램 회사로 출발했고, 2012년 SK그룹에 매각되기 전까진 재무상황이 여유치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처럼 D램·낸드를 동시에 투자해나갈 수가 없었고, 전략적으로 D램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SK그룹으로 편입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든든한 실탄이 있었고 본업인 D램 시황도 좋았습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업계 관계자는 고위급에서 작지만 기술력 있는 컨트롤러 업체를 여러개 인수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컨트롤러 기술도 용도에 따라 다른 만큼 여러 업체를 인수해야 종합적인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간판을 바꾼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컨트롤러 분야 기술 기업 LAMD라는 업체를 287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대만 이노스터의 컨트롤러 사업부를, 2014년에는 펌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벨라루스의 소프텍을 잇따라 인수하며 낸드 사업 도약을 위한 광폭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2017년에는 당시 매물로 나온 일본 도시바(현 키옥시아) 인수에도 눈독을 들였습니다. 도시바는 삼성전자에 이은 낸드 업계 2위이자 다수 원천 특허를 보유한 ‘낸드 종가’이며, 무엇보다 컨트롤러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를 막으면서 SK하이닉스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도시바의 지분 49.9%를 투자하는 것으로 다소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이때 SK하이닉스가 쏟아부은 돈이 약 4조원입니다.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전략적으로 컨트롤러 기술 확보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지분이 절반 이상이었고, 도시바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기술력을 넘기지 않으면서 당초 목적이 변질돼 재무적 투자자로 남게 됐다"고 전합니다. 결과적으로 기술 확보는 커녕 경쟁사 주식투자를 한 셈입니다(참고로 키옥시아는 최근 상장 계획을 백지화한 상태여서 SK하이닉스의 자금 회수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말까지 70억달러를 1차로 인텔에 지급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측은 "키옥시아 투자는 단기적인 기술확보 목적보다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발전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는 키옥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적 관점의 투자"라고 말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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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낸드. /SK하이닉스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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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현재 낸드 사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역량을 확보하긴 했으나, 여전히 모바일 단품 위주이고 삼성전자에 비하면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시 인텔에 10조원을 태워야 하는 상황이 온 건 이 때문입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사람이 전부인데, 인수·합병되는 순간 조직이 흔들리고 기술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안타깝게도 투자한 만큼 100% 기술 흡수를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일부는 아예 날리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인수합병에서는 1+1이 2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번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는 컨트롤러 등 기술력 확보 면에서 적어도 1 이상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용 SSD 강자이자 컨트롤러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인텔을 품은 SK하이닉스가 SSD 시장에 본격 뛰어들어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출 수 있다면 시장 파이 역시 커질 것이란 점도 기대해볼 만한 구석입니다. 같은 용량 기준으로 현재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보다 약 3배 정도 비싼 SSD가 1.5배 정도로 가격 차를 좁힐 수 있게 된다면, 아직 HDD를 채택하고 있는 PC나 서버 시장마저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의 ‘통큰 투자’가 이번에는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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