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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이건희 27년 걸어온 길…"외로움 많이 탄 영화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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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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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소년 이건희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 또래 친구가 없었다. 자연스레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고 영화에 심취하게 됐다. 일찍이 일본 유학을 떠났는데 3년 동안 1200편 이상의 영화를 본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광(狂)이었다.


작은 체구는 콤플렉스였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을 배우고 럭비에 빠져든 것도, 작지만 탄탄한 몸을 만들어 남에게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7년 출간한 자작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럭비는 한번 시작하면 눈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는다. 걷기도 힘든 진흙탕에서 온몸으로 부딪치고 뛴다. 오직 전진이라는 팀의 목표를 향해…"라고 썼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까지 맡았다.


호암은 학창 시절의 이 회장에게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을 가르쳤다. 어떤 농부가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풀어놓고, 다른 쪽 논에는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풀어놓았더니 천적인 메기와 뒤섞여 풀어놓은 미꾸라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튼실했다는 것. 살아남으려면 메기보다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회장 경영 철학에 기초를 놓는다. 이 회장은 스스로 '메기'가 되기도 했고 자식들의 시험장에도 끊임없이 메기를 풀어놓았다.


이 회장은 사람 보는 눈이 남달랐다고 서울사대부고 친구 고(故) 홍사덕 전 의원이 얘기했다.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 동안 근무하고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 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어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 창업주의 집무실 바로 옆방에서 경영에 뛰어들었다. 호암은 "건희는 기업 경영에 취미와 의향이 있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면서 일찍이 이 회장을 후계자로 점찍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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