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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국반도체 인수 검토하라” 한마디…삼성, 세계적 기업 시발점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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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두 전 호암재단 이사장 추도사



이건희 1942~2020



중앙일보

손병두


“이건희 회장님.”

건강을 회복하신 회장님을 이렇게 불러보길 얼마나 기도드렸는지 모릅니다. 매일 새벽 미사 때마다 회장님의 쾌유를 빌어드렸는데 제 기도의 힘이 많이 모자랐나 봅니다.

회장님과 맺었던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부회장님으로 가까이 모시고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이는 저와 동갑이지만 과묵하면서도 깊은 사고와 내공, 사물에 대한 긴 안목과 통찰력, 일에 대한 무서운 집념, 대범하면서도 섬세하고 자상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한국 경제를 세계적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크게 공헌한 기적의 사람이셨습니다.

삼성에서 아무도 반도체를 모르던 시절, 어느 날 하루 서류뭉치를 저에게 주시면서 검토하라고 하셨습니다. 한국반도체 인수 서류였습니다. 저 역시 반도체에 대해 문외한이었기에 국내 전문가를 찾아보고 외국 문헌을 뒤적이며 검토한 결론은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쌀이다’였습니다. 회장님이 이병철 회장께 인수를 건의하니 처음엔 말리셨다고 했습니다. 이때 이 회장님이 ‘내 돈으로 인수하겠다’고 해 시작한 것이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선대 회장님께서 이건희 회장님을 후계자로 키우시기 위해 엄한 훈련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계자가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묵묵히 인내하고 이겨내어 후계자가 되셨습니다. 회장님은 가히 초인적인 노력으로 밖에서 들려오는 온갖 악성 루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달성에 매진하셨습니다.

회장님은 항시 기업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사업보국의 정신을 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을성 많은 이 회장님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자리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던 장면은 저희들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언젠가 회장님 초대로 승지원에서 전경련 회장단 부부 만찬 모임이 있었지요. 그때 제 소망은 회장님을 전경련 회장님으로 모시고 한국 경제계의 큰 혁신을 이루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모든 전경련 회원사들이 이 회장님을 전경련 회장님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고사하시어 모두들 아쉬워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대로 말씀을 나누지 못하고 영면하시어 많은 회한이 있으시겠습니다. 그래도 든든한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을 키워 놓으셨으니 후사를 맡기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시옵소서. 천국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2020년 10월 손병두 올림

전 호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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