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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선거는 늘 여기서 끝난다"…'트럼프 하우스' 북적이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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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펜실베이니아 현장 가보니

'트럼프 하우스'에 4m짜리 조형물

지지자들 기념촬영하는 '성지' 돼

트럼프 승리 전 20여년 민주당 아성

바이든-오바마, 바닥 다지며 설욕 노려

선거 3일 뒤 도착 우편투표까지 유효표

"개표 결과 발표 지연되면 혼란 우려도"

중앙일보

25일(현지시간) 4m 짜리 대형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을 세워놓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의 '트럼프 하우스'. 방문객들에게 트럼프 모자, 티셔츠 등 기념품을 나눠주며 투표를 독려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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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시의 영스타운. 피츠버그에서 1시간여 떨어진, 이렇다 할 관광지도 없는 시골 마을의 집 앞이 외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벽면 전체를 성조기 모양으로 페인트칠한 이 집은 '트럼프 하우스'로 불린다.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곳에서 나눠주는 트럼프 모자·티셔츠·깃발 등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도로변 잔디밭에는 4m짜리 대형 도널드 트럼프 전신 패널도 세워놨다. 기념품을 받은 이들은 이 패널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마스크를 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사진을 반쯤 집어 넣어뒀다. 마치 관에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뒷마당에는 '트럼프 2020'이란 옷을 걸친 악어들이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정치인들을 잡아먹는 듯한 모습도 연출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을 쫓아낼 수 있도록 "늪을 말려버리겠다(Drain the swamp)"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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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의 '트럼프 하우스'에는 기념품을 받으려는 지지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김구슬 JT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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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거리의 윈드버에서 가족과 함께 온 백인 여성 던 프리먼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있어 흥분된다"고 했다. "다음 선거에 18살이 되는 큰아들에게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눈물도 났다"고 말했다.

이 집의 주인은 레슬리 로시는 방명록을 보여주며 "많을 때는 하루에 1000명 정도가 이곳을 들른다"고 했다. 로시는 지은 지 100년 됐다는 이 낡은 집을 4년 전 대선 때 구입해 '트럼프 하우스'로 개조했다. 당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유권자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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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에서 '트럼프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레슬리 로시는 ″많을 때는 하루 1000명이 이곳을 들른다″고 말했다. [김구슬 JT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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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은 '2020 트럼프. 더 이상의 헛소리는 없다(No more bullshit)'라는 문구의 깃발이라고 말했다. 로시는 "우리의 총을 빼앗고, 미국적인 가치를 빼앗으려 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사람들이 진절머리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 역시 결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며 "이곳에서부터 트럼프 지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로시의 말대로 펜실베이니아는 노스캐롤라이나·플로리다·애리조나·위스콘신·미시간과 함께 이번 대선의 승부를 결정지을 6개 경합주로 꼽힌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 따르면 23일 현재 바이든 후보가 5.1%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한때 8%포인트 이상 벌어졌던 격차는 대선 막바지로 가면서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년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1%p 이내의 초접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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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승리의 열쇠인 경합주(州).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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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에게 "여론조사에서 계속 뒤지는데 트럼프가 이길 수 있겠냐"고 묻자, 대답 대신 주변의 지지자들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여러분, 미국 언론을 믿는 분 있습니까?" . 그러자 여기저기서 "가짜뉴스", "안 믿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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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의 '트럼프 타운'에는 워싱턴의 민주당 정치인을 쫓아내겠다는 뜻으로 ″늪을 말려버리겠다(Drain the swamp)″고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호를 구현한 조형물도 가져다 놨다. [김구슬 JT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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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의 '트럼프 하우스'에선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조형물도 설치해 놨다. [김구슬 JT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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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부 라트로브의 '트럼프 하우스'를 방문한 지지자들이 대형 트럼프 사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구슬 JT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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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의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졌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 개표함이 열렸을 때 언론들은 이렇게 썼다. 선거 직전 클린턴 후보가 1.9%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트럼프가 0.7%포인트(4만4292표 차) 차로 승리했다.

당시 개표 현황을 전하던 블룸버그TV에선 "오늘 밤 가장 충격적인 결과"라는 논평이 나왔다. 20여년간 민주당이 지켜온 표밭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이곳에선 줄곧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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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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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방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민주당 후보들이 늘 하던 대로 필라델피아 같은 도심 지역의 '집토끼'만 관리하고 외곽지역은 거의 찾지 않았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선거 당일 '샤이 트럼프'들이 나선 것도 있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투표소에서 발길을 돌린 것도 클린턴 패배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 바이든은 전략을 바꿨다.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서부지역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1차 TV토론을 마친 뒤엔 일부러 기차를 타고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나눠 이 지역을 훑고 지나갔다. 21일 지원전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 유세 장소로 택한 곳도 펜실베이니아였다. 바이든 후보는 24일에도 부부가 함께 펜실베이니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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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 후보와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펜실베이니아 벅스카운티 커뮤니티대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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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역시 맞대응에 나섰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이 지역 중심 산업인 석유 시추산업을 없앨 거라고 경고하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바이든 측에선 즉각 "신규 시추를 막겠다는 것이지, 기존 산업까지 없애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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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펜실베이니아주(州) 지지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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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듯 선거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끝난다." 마이클 누터 필라델피아 시장이 폴리티코에 한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된 건 초접전 상황 말고도 또 있다. 선거 결과가 다른 주에 비해 늦게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는 다른 주와 달리 주 선거법상 우편으로 온 투표용지 봉투를 선거 전에 미리 뜯어놓을 수 없다. 조기투표 용지를 세는 것도 선거 당일 저녁, 투표 마감이 된 뒤에야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펜실베이니아에선 선거일부터 사흘 뒤까지 도착한 우편투표 용지를 모두 유효표로 본다. 공화당 쪽에서 이를 막아 달려며 소송을 냈지만 최근 연방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우편 투표 참여자가 유례없이 늘어난 가운데 선거 결과 발표가 늦어져 예상치 못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펜실베이니아 주 선거 관계자들이 걱정하는 건 선거 당일이 아니라 그다음 단계"라고 19일 보도했다.

지역별 선거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11월 23일까지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주 의회 재량으로 선거인단을 짜서 워싱턴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정 분쟁도 불가피하다. 결국 누가 이기든 논란이 빚어질 소지가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WP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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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시민이 나오고 있다. [이광조 JTBC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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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에게 사전투표를 했다는 피츠버그 시민 저스틴 브라운은 "개표 결과가 늦어질 경우 상당한 혼란이 생길 거란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결국은 결과에 승복하고 미국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트로브·피츠버그=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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