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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공수처 지연전술에 뾰족수 없다···회심의 ‘비토권’이 여당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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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야당이 또다시 시간 끌기를 하는 등 꼼수와 정략으로 나온다면 민주당은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한다"고 밝혔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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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주말 사이에 두 사람의 추천위원을 내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시지탄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민의힘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후보 추천위원 내정 소식에 대해 한 말이다. 이날은 민주당이 야당에 최후 통첩한 ‘D데이’였다. 민주당은 이날 이후 ‘공수처법 개정→야당 추천 없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 구성→공수처 출범’의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추천위원을 내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구성되면, 공수처장 임명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공수처 출범과 관련해 국회가 할 일도 끝나고, 공수처법 개정을 밀어붙일 명분도 사라지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추천위원으로 내정한 임정혁·이헌 변호사는 보수 색채가 뚜렷하다. 임 변호사는 검찰 내 공안통 출신이고,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김 원내대표가 이날 “야당의 의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미리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두 변호사의 면면을 보면 국민의힘이 작정하고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경우 우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며 “법 자체가 야당의 ‘비토(veto·거부)권’을 명문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명분이던 ‘비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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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은 20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 등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국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 당시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여당의 법안 제출을 막으려 몸싸움을 벌이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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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모두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위원 6인 이상의 찬성으로 후보를 의결한다. 7명 가운데 야당 추천 위원은 2명이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모두 반대하면 공수처장 후보를 정할 수 없다. 이른바 야당의 ‘비토권’이 보장된 셈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공수처법에 ‘비토권’을 명시한 건 제1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명분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력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라고 공수처법에 반대했고, 민주당은 ‘비토권’을 근거로 “기존의 어떤 기관보다도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구성된다”고 반박했다.

다만 당시 ‘비토권’의 기능은 지금과 달랐다.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에서 민생당까지 제3의 교섭단체가 있었기 때문에, 야당 추천 위원 2명 중 1명은 제3의 교섭단체에게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이 때문에 당시 윤한홍 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야당에서 두 사람을 추천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는데,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다 자유한국당이나 정부에 반대하는 야당이 아니지 않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21대 총선에선 20석 이상의 국회 교섭단체가 두 곳(민주당,국민의힘)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야당 몫 2자리가 모두 국민의힘에게 돌아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에서 패스트트랙을 주도한 핵심관계자는 “당시 공수처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묶여 진행됐다”며 “누구도 21대 국회에서 지금과 같은 양당제가 이뤄질 줄 몰랐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긴 힘들었다”고 말했다.



민주 “공수처법은 절차대로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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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절차에 따라 계속 심사한다는 방침이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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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후보 추천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7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의결이 가능하므로,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표만 던지면 공수처 출범이 한없이 늦어질 수 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백혜련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에 “추천위원회는 30일 이내에 처장후보자 추천을 위한 의결 절차를 마쳐야 한다”(개정안 제6조 8항)는 조항이 추가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민주당은 추천위원회의 의결을 지켜보는 한편, 법사위에서도 공수처법 개정안 심사를 절차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백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에서도 공수처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절차대로 법안 심사는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런 흐름이 “고의적인 공수처 출범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공수처장 추천 의결이 장기간 지연될 경우 ‘공수처법 개정→추천 기한 지정→공수처 출범’을 통한 강제 출범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법 자체를 이미 강행처리한 마당에,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또다시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도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한 여권 인사는 “일방적인 법 개정은 공수처가 독재기구라는 야당측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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