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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국감 송곳질의 한방 없고…"한대 칠까" 이런 한방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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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치인에게 국정감사는 좋은 무대다. 너나없이 날 선 질의로 지적 매력을 뽐내고, 피감기관장을 쩔쩔매게 하는 장면을 그린다.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 무대라고 다를 바 없었다. 너도나도 ‘한 방’을 노렸는데, 그 한 방이라는 건 대개 이런 식이었다.

중앙일보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장에서 이원욱(오른쪽) 과방위원장과 박성중 국민의힘 간사가 인사하고 있다. 국감이 진행될수록 둘 사이는 험악해졌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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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 칠까?”=지난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에선 한 정치인의 주먹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종합감사가 진행되던 중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이 사람이 정말, 한 대 쳐 버릴까”라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방위원장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인 것이다. 두 사람은 질의시간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이 위원장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사람이”라고 소리 지르며 박 의원 쪽으로 다가오자 박 의원이 벌떡 일어나 맞대응한 것이다. 이런 말다툼도 오갔다.

▶이=“여태까지 얼마나 배려를 해줬는데, 질문하세요. 질문해.”

▶박=“반말을 해? 똑바로 하세요. 아이 XX, 위원장이라고 진짜 더러워서.”

▶이=“야, 박성중! 너 보이는 게 없어?”

▶박=“‘야’라니, 이 건방진 나이도 어린 XX가.”

이후 이 위원장은 의사봉을 거칠게 내려친 뒤 바닥에 던지며 감사중지를 선포했다. 피감기관장인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었고, 국회 속기사는 귀를 막았다.

중앙일보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왼쪽)과 김도읍 국민의힘 간사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둘은 말다툼 과정에서 평소 사용하던 '님'이란 존칭을 생략한 채 반말을 주고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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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왜!”=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감에선 민주당 소속 윤호중 위원장과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 사이에 설전이 있었다. 김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관련 자료를 민홍철(국회 국방위원장) 민주당 의원실에만 제출하고 야당에는 안 줬다”는 취지로 서욱 국방부 장관을 몰아세우자 윤 위원장은 “생각을 좀 입체적으로 하라”고 다그쳤다. ‘열 받은’ 김 의원이 윤 위원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말다툼으로 번졌다.

▶윤=“김도읍 간사. 김도읍 간사.”

▶김=“….”

▶윤=“이제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김도읍 간사. 위원장에게 사과하라는 겁니까?”

김 의원의 사과 요구에 윤 위원장은 “국방위원회에서 한 서면질의에 대해 답변한 것이라 (법사위 국감에서) 왜 자료 안 주냐고 하는 건 격이 안 맞다. 제대로 설명하면 좀 알아들으라”고 호통쳤다. 그러자 김 의원이 맞받았다.

▶김=“위원장.”

▶윤=“왜.”

▶김=“왜?”

▶윤=“왜.”

▶김=“위원장.”

▶윤=“왜 그래요!”

▶김=“그거(서류 제출 여부)는 국방부가 답변할 얘기에요.”

결국 윤 위원장이 서 장관에게 “김 의원에 자료 제출을 해 달라”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

중앙일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질의 중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상직 무소속 의원의 관계도가 그려진 화면을 모니터에 띄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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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공당한 의혹 제기=지난 22일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감 땐 신동근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사단”이라고 주장하며 전·현직 검사들의 이름이 적힌 인물관계도를 화면에 띄웠다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항의를 받았다. 신 의원은 “솔직히 얘기해서 이분들 한동훈 밑으로 해서 다 윤석열 사단 아니냐”고 물었는데, 정작 윤 총장의 답변은 듣지도 않은 채 발언만 이어갔다. 이윽고 질의시간 초과로 신 의원의 마이크가 꺼지자 윤 총장은 “아니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면 답을 할 기회를 주시고, 의원님이 그냥 말씀하실 거면 저한테 묻지 마시라”고 맞받았다. 신 의원이 “반박 있으면 해보라”고 하자 윤 총장은 “지금 이 도표를 보니까 ‘1987’ 영화가 생각난다, 이게 뭐냐.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느 정당 정치인이 부패에 연루되면 당 대표까지 책임져야 하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교통부 종합감사 땐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인물관계도를 띄웠다. 골프장 입찰과 관련해 같은 김현미 장관과 같은 전주 출신의 이상직 무소속 의원, 구본환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사이 “권력형 게이트가 의심된다”면서다. 김 장관은 곧장 “이게 게이트라는 이유는 무엇이고 근거는 뭐냐” “의원님은 의원님 지역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의혹 당사자가 되는 거냐”고 반박했다. 정 의원이 “(이 의원과)누나, 동생 하는 사이고”라고 하자 김 장관은 “저와 누나, 동생이라고 하는 우리 당 의원님들이 줄을 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상임위를 제외하곤 26일로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란 평가의 20대 국회가 끝나고, 새 얼굴들이 대거 들어온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였던 까닭에 일말의 기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블랙코미디 몇 장면만을 남긴 채 무대는 끝났다. “정치는 4류”라던 한 기업인의 탄식 뒤 무려 세기(世紀)가 바뀌었지만, 지금 보면 그의 평가가 되려 후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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