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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내 작품 강탈"...첨성대 조형물, 이번엔 무단철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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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달 15일 서울시가 작가의 동의 없이 강제로 철거한 한원석 작가의 작품 '환생'이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 방치돼 있다. 한원석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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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복판에 설치된 뒤 적절하느냐는 논란을 거듭했던 첨성대가 철거 뒤에도 무단철거 논란에 휘말렸다. 미술계는 논란의 이유가 무엇이든 공공미술에 대한 낮은 인식이 드러난 사건이라 지적하고 있다.

27일 미술계에 따르면 논란의 진앙지는 설치작가 한원석(49)의 작품 ‘환생(Rebirth)’이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서울 정동 서울성공회성당 앞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위에 설치됐다. 한씨는 담배꽁초와 폐자재 등을 활용해 건축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해 온 작가. 한씨는 폐자동차의 헤드라이트 1,374개를 쌓아 올려 첨성대 형태로 ‘환생’을 만들었다. 높이 9.5m에 무게만도 22톤이다. 2006년 제작된 이 작품은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전남 순천만 정원 등에 전시됐다. 서울시가 한국건축가협회에 위탁해 운영 중인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측은 해당 작품을 지난해 말 설치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6월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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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작가가 폐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활용해 첨성대를 형상화한 '환생'이 올해 6월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1층 옥상에 설치돼 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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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직후부터 이 작품은 논란에 휩싸였다. 가장 큰 이유는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비판이 몰아치자 서울시는 한씨에게 전시 조기 종료를 종용했다. ‘최소 6개월 이상 전시되어야 한다’는 계약과 달리 전시는 8월 15일 3개월 만에 일방적으로 종료됐다. 서울시는 “부정적인 여론이 있을 시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사전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철거 및 이전 과정에서 작가와 서울시 갈등은 더 깊어졌다. ‘작품을 빨리 옮기라’는 서울시 측과 ‘이전 장소와 시기를 협의하자’는 작가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작품은 두 달 넘게 방치됐다. 한 작가는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작품을 기증받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고, 전시관 측과 이전 계획 및 일시 등을 협의하는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달 13일 작가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작품 철거를 강행했다. 철거업체는 작품을 여섯 조각으로 분리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씨는 불법 철거를 중단하라며 사실관계 확인 공문을 보냈지만 철거가 진행된 5일 동안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철거업체는 18일 분해한 작품을 트럭에 나눠 싣고 서울 외곽의 한 보관창고로 운송했다. 한씨가 직접 트럭을 저지해 분해한 작품 가운데 두 조각은 작가의 작업실로 옮겨졌다. 한씨는 “서울시의 묵인하에 협회가 내 작품을 강탈해 갔다”며 “계약내용은 불문하더라도 작품을 안전하게 철거해 작가에게 되돌려 주는 게 상식인데 작품을 저렇게 무참하게 뜯어 가져가는 게 말이나 되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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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원석 작가가 작가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작품을 해체, 철거, 보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울시 묵인하에 협회가 작품을 강탈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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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협회 측은 “꾸준히 작품 철거를 요청했지만 듣지 않아 계속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작품을 별도 보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작품 설치과정에서 전시장 일부가 훼손된 데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감안한 것”이라고도 했다. 한씨 또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 동의도 없이 작품을 경북도청으로 옮기려다가 경북도청이 작가 동의 없이는 못 받겠다고 하자 작품을 가져가 버린 것”이라 반박했다. 한 작가도 협회를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했다.

미술계는 작가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창겸 미디어아트협회 이사장은 “서울시가 작가 고유의 창작 결과물인 작품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후진국’임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라 지적했다.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도 “작가 허락 없이 작품을 해체, 철거한다는 건 몰상식한 일”이라며 “공공미술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해 작가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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