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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시력 잃어가는 송승환 “흐릿해지는 세상, 마지막 설 곳은 무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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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작자, 연출가, 교수 등 다양한 명함을 가졌지만, 송승환이 가장 아끼는 이름은 ‘배우’다. 다음 달 18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더 드레서’를 통해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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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 봅니다. 나를 잊고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찾아오는 카타르시스가 얼마나 짜릿한지. 그래, 바로 이 맛에 연기하는 거였지, 싶더군요.”

따지고 보면 단 한 순간도 무대를 떠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로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인가 보다. 최근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난 송승환(63)은 다음 달 18일 이 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더 드레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번엔 기획자, 연출자, 제작자가 아닌 ‘배우 송승환’으로 무대를 밟는다. 연극으로 치면 2011년 ‘갈매기’ 이후 9년 만의 복귀작이다.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 “행복하다”고 하더니 “앞으로 관객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더 드레서’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각본을 쓴 로널드 하우드의 작품.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영국 어느 지방 극장에서 연극 ‘리어왕’을 올리기까지 노배우 ‘선생님(Sir)’과 그의 의상담당자 노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전쟁, 예술, 삶이 어우러진, 20세기 후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꼽은 건 송승환의 선택이었다. 정동극장에서 연극을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을 받자 ‘이 작품이면 하겠다’고 대답한 것. “극의 배경이 무대와 분장실이고, 제 역할 ‘선생님’도 저랑 똑같이 극단 대표이면서 배우예요. 바로 내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선생님’은 흐릿해진 정신에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기어이 무대에 오른다. 극장 밖에선 공습 경보가 울린다. 코로나19에도 무대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현재 공연계 상황과도 포개진다. 요즘 공연계 어려움을 얘기하던 송승환은 대사 한 토막을 나지막이 읊었다. “우리는 무참한 전쟁 옆에서 또 다른 싸움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기 위해 극장으로 오시리라 믿습니다.” 그는 “힘겨운 시기에 연극이 필요한 이유를 이 작품이 잘 보여 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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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을 위해 후배 연극인들이 기꺼이 연극 '더 드레서'에 합류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연출을 맡았던 장유정이 연출을 맡고, 배우 안재욱, 오만석, 배해선 등이 연기 호흡을 맞춘다. 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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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에게 이 무대가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그는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글자는 아예 못 읽고, 마주 앉은 사람도 얼굴 형태 정도만 알아본다.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도전을 꺼리지 않았다. 대본은 귀로 외웠다. 혹여 주변에서 걱정할까 봐, 연습 첫날 대사 한 줄 빠짐없이 모두 외워 갔다. 이 얘기를 들려주는 송승환은 의외로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의학적으로 병의 진행은 멈추었대요. 실명할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요. 이제는 보는 대신 듣는 생활이 더 익숙해요.”

좋아하는 일, 그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게 송승환을 행복하게 만든다. “어떤 선택을 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저는 돈, 명예, 권력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문화부 장관 해 보라는 것도 재미없을 거 같아서 안 했고요. 제 기준은 오로지 재미가 있느냐, 내가 밤잠을 설쳐 가며 몰두할 만큼 즐거운가, 그겁니다. 이번 연극도 6주 동안 원캐스트로 공연하는데, 이게 또 그렇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1965년 아역배우로 데뷔해 TV, 영화, 연극, 뮤지컬을 종횡무진하며 해 볼 것 다 해 봤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를 제작해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ㆍ폐막식 총감독, 공연 관련 단체장, 대학 교수까지도 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 빼곤 다 해 본 것 같다”며 웃던 송승환은 “이 모든 게 그저 재미있어서, 좋아서 한 일”이라 말했다.

이 많은 일을 해내려고 젊은 시절엔 독하게 굴었다. 하루 24시간을 3등분해서 한 달을 90일짜리 스케줄로 만들어 일했다. “하루를 셋으로 나눈 3분의 1을 ‘제 방식의 하루’라고 치면, 그 바쁜 스케줄 틈에도 쉴 시간이 보여요. 그러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죠. 어릴 때부터 학교 수업 받으며 대본 외우고, 분장실에서 시험 공부 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게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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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은 “노역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얼마나 다양할지 궁금하다”며 “앞으로는 연기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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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연기에 좀 더 집중해 볼 생각이다. 청춘배우로 인생 1막, 공연 제작자로 2막을 보냈다면, 이제부터 “노역 배우로 인생 3막을 열어 가겠다”고 했다. 연극 ‘에쿠우스’의 알런과 다이사트를 모두 연기한 흔치 않은 경험을 갖고 있지만, 한 번도 못해 본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 역할을 새롭게 꿈꾸기도 한다.

“이것저것 다 해 봤지만,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배우예요. 인생 마무리로 가장 하고 싶은 연기를 실컷 하고 싶어요. 노역 배우의 시간이 설레고 기대돼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았으니까요.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아무 후회도 남지 않을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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