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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주호영 신원 검색 "황당해"…고성·항의로 얼룩진 文대통령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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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문재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야당 의원들의 고성 항의가 터져나왔다. 야당의 항의로 대통령 연설 시작이 지연되기도 했다. 대통령 국회 연설에서 야당이 항의 차원의 '피켓팅'을 한 경우는 전·현 정권에서 제법 있었지만, 연설 도중에 고성 항의가 나온 것은 초유의 일이다. 대통령 연설 시작이 미뤄진 것도 마찬가지다.

28일 문 대통령이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성으로 항의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설치한 투명 가림막 등으로 이들의 말이 정확히 전달되지는 않았으나,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 도입 주장과 야당 원내대표의 공개 질의에 대해 청와대가 답변하지 않은 데 대한 항의 등의 내용이었다.

야당의 항의는 문 대통령이 연단에 선 이후까지 이어졌고 이에 따라 연설 시작이 잠시 미뤄졌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나서서 "대통령 시정연설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야당도 예의를 갖춰 경청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소리가 좀 작아졌을 뿐 완전히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박 의장은 결국 이 상태에서 문 대통령에게 그대로 연설을 시작해 달라고 했고, 문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고 나서야 항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연설 도중 "최근 서해에서의 우리 국민 사망으로 국민들의 걱정이 크실 것"이라며 "평화체제의 절실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자, 연설 중간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들이 다시 큰 소리로 항의·야유를 보냈다.

또한 "지금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하다"고 한 대목, "권력기관 개혁 법안도 입법으로 결실을 맺어 달라"고 한 대목에서도 재삼 야당 의석에서 고성이 나왔다.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개혁이란 국민의 여망이 담긴 공수처의 출범 지연도 이제 끝내 달라"는 대목에서도 야당의 항의가 예상됐으나, 여당 의원들은 이를 예상한 듯 큰 박수소리로 이를 덮어버렸다.

대통령 연설 내내 야당 의원들의 의석 모니터 단말기 뒷편에는 "이게 나라냐", "나라가 왜이래"라고 쓰여진 피켓(손팻말)이 붙여져 있었다.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우리가 요구한 질의에 대한 답변도 없고 특검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데 대한 (항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설을 마친 문 대통령은 야당 의석 한가운데 통로를 지나 회의장 뒷편으로 이동했고, 야당 의원들은 이때도 문 대통령 양쪽에서 피켓을 들며 항의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았고, 다시 여당 의석 쪽으로 이동해 여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대통령 시정연설이 이뤄지는 본회의장에 야당의 주장을 담은 손팻말이 등장한 것은 2015~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를 비롯해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대통령 연설이 야당의 고성 항의로 방해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문 대통령 국회 연설 당시 야당(자유한국당)이 "조국! 조국!" 등 소리를 지르며 항의한 일이 있기는 했으나, 그 때는 대통령 연설 시작 전에 국회의장이 의석 정리를 요청한 시점에서 '고성'은 이미 잦아들었었다.

문 대통령의 본회의장 입장 전부터도 야당의 항의는 계속됐다. 문 대통령이 국회 본청 앞에서 하차해 국회의장실로 이동하는 길에도, 국회의장실에서 사전 환담을 마치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동선 양편에 도열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내보인 것과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특검거부 진실은폐 그자가 범인이다", "국민의 요구 특검법 당장 수용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 수용을 주장하며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 간의 사전 환담에 불참하기도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라임· 옵티머스 사태를 특검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국회 방문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여야 대표 환담에 야당 대표가 불참한 것도 매우 전례가 드문 일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에도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환담에 참석해 '조국 전 법무장관 사표 수리는 잘하셨지만, 그전에 이뤄진 임명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유감의 뜻을 표해 달라'고 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환담 말미에 "워낙 전천후로 비난을 하셔서…"라며 웃었다.

'앵그리 야당', 왜?

야당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 주장뿐 아니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7월 16일 문 대통령에게 보낸 10개항의 공개 질의에 대해 대통령이 100일 넘게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야당 무시'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 등 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국회 본청에서 의원총회 및 규탄대회를 열고 대통령·여당에 대한 비판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수십 년 헌정에 이렇게 폭정을 일삼는 정권, 국민과 불통인 대통령은 처음"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지키려 해도 부정과 비리는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어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특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이라며 "'추미애 검찰'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하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수사팀에 수사를 맡기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의도가 무엇이겠느냐. 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민주당은 우리 당의 공직자 추천까지 간섭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공수처장 추천에) 동의하지 않으면 추천권까지 뺏겠다는 오만방자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여당을 비판하고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장내 투쟁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지만, 민주당이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하면 우리도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과 함께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의원총회 이후 국회 본회의장 앞 로비로 이동해 규탄대회를 연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후 문 대통령의 국회 도착 시각에 맞춰 준비한 항의 행동을 곳곳에서 펼쳐 나갔다.

이런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이날 김종인 비대위원장 대신 사전환담에 참석하려던 주 원내대표에게 경호처 직원이 신원검색을 요구·실시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야당 의원들은 더 격앙됐다.

주 원내대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경호부장이 찾아와 실수였다고 사과했는데 실수가 있을 수 없다. 실수인지 입장을 막기 위해 의도된 것인지 챙겨보겠다"고 했다.

국회 사무총장, 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도 "제가 국회 사무총장을 해서 잘 아는데 대통령과 각 당 대표와의 티 타임 때 수색하고 제지한 전례가 없다. 전두환 때도 이렇게는 안 했다"고 격분한 반응을 보였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본회의 연설 시작 전 "야당이 주장하는 데 대해 사실을 철저히 확인하고 합당한 조치를 할 것이며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하고 "청와대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시정연설 시작 전 야당의 항의로 연설이 다소 미뤄진 것은 이런 사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서는 대통령 시정연설에 대해 김태년 원내대표가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충분히 국민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계시고, 국난을 잘 극복해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레시안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야당 의석에 항의 피켓이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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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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