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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이동국이 밝힌 은퇴 이유 "정신이 나약해지는 게 싫었다"[현장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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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동국이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전주 | 정다워기자


[전주=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 은퇴를 선언한 ‘라이온킹’ 이동국(41)은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현역에서 물러나는 심경을 밝혔다. 이동국은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이동국은 올해 무릎을 다쳐 2개월간 장기 이탈했고, 이 과정에서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통해 혜성 같이 등장했던 이동국은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존재가 돼 축구화를 벗게 됐다.

이동국은 “이번 부상을 당하면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데도 욕심을 내서 들어가려고 했다. 불안한 모습을 많이 느꼈다. 사소한 것들에 서운해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은퇴 생각을 하게 됐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라는 은퇴를 결심한 배경을 밝혔다.

다음은 이동국과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백승권 단장님, 김상식 코치님께 감사드린다. 먼 곳까지 많은 분께서 찾아주셔서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몸 상태는 좋다.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됐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장기 부상으로 인해 조급해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전에는 다쳐도 긍정적으로 재활하며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 복귀했다. 이번 부상을 당하면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데도 욕심을 내서 들어가려고 했다. 불안한 모습을 많이 느꼈다. 사소한 것들에 서운해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은퇴 생각을 하게 됐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진지하게 은퇴 고민을 했다.

-은퇴 결심을 굳힌 배경은?
부상을 당한 후 그랬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조급한 모습을 발견했고, 더 이상 운동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2의 삶이 있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아내와 이야기를 했고, 그만해도 될 때가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가 봐도 그렇다.

-은퇴 발표를 최종전 앞두고 했다.
사실 울산전 전에 구단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했다. 울산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 후에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상의를 하고 발표를 했다.

-지금 심경은?
지금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한 마음 반, 기대되는 마음 반이다. 주위에서 많이 연락을 받았다. 1년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만두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경쟁력이 있을 때 은퇴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순간을 꼽자면?
프로 유니폼을 처음 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33번, 제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을 받았다. 그 유니폼을 입고 며칠 동안 잤다. 기억이 많이 난다. 2009년 전북에 와서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가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꼽자면?
2002년 월드컵을 뛰지 못했을 때를 기억한다. 지금까지 늦게까지 운동을 할 수 있는 보약이 됐다. 항상 잊지 못할 기억이다. 덕분에 선수 생활을 오래 했다. 2006년에 월드컵 두 달을 남기고 다쳤을 때도 기억난다. 모든 것을 걸고 준비했는데 부상으로 인해 뛰지 못했다. 경기력 면에서는 제 선수 생활에서 가장 완벽했던 때였다.

-최고의 골을 꼽자면?
많은 골이 생각나지만 독일전 골이 생각난다. 발리슛으로 골을 넣은 게 가장 기억난다. 공이 발에 맞는 찰나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최강희 감독도 생각날 것 같다.
보통 은퇴를 쓸쓸하게 하는 선수들이 많다. 많은 분들 앞에서 은퇴하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2009년에 입단 후 전북이라는 팀을 같이 일궈냈다. 감독님은 제가 모르고 있던 기량을 다시 끄집어내주신 분이다. 다시 인정받고 사랑받게 해주신 분이다. 평생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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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과 김상식 코치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전주 | 정다워기자


-30대 중반 지나면서 늘 은퇴 이야기를 했다. 1년 연장할 때마다 본인을 잡아준 원동력은?
이번에도 선수들이 단체로 있는 메신저 방에 은퇴한다고 하니 아무도 믿지 않더라. 늘 후배들에게 올해가 마지막이라 했다. 현실이 될 줄 몰랐다고 선수들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한 비결은 멀리 보지 않고 당장 앞의 경기만 신경쓴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고 하지 않도 먼저 앞에 서서 파이팅을 외쳤다. 제 나이를 모르면서 산 것 같다. 저도 제 나이를 들으면 놀란다.

-좌절을 극복했기 때문에 더 위대한 선수가 됐을 것이다. 좌절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자면?
저는 좌절을 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더 큰 좌절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 이만큼의 좌절은 저 큰 좌절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선수 생활에 임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이 없는 삶을 산 것 같다.

-후배들에게 조언하자면?
어차피 프로 선수라는 직업은 선후배를 떠나 동료와의 경쟁을 해야 하는 일이다. 살아남아야 오래 할 수 있다. 이겨내려면 자기만의 특별한 것을 내세워야 한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올 정도로 키우면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파트너를 꼽자면?
김상식 코치님도 여기 계시지만 2000년부터 만나서 많은 것을 함께했다. 전북에 2009년 함께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꼭 들어가야 한다. 2009년 멤버들이 많이 생각난다. 에닝요 루이스 최태욱 등이 전북이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었다. 그때 멤버들이 강했다.

-전북, 전주에서의 생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제 고향 포항에 가면 내비게이션을 켠다. 전주에서는 그냥 다닌다. 제2의 고향과 다름이 없다. 전북에서 얻은 것들이 너무 많다.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10년 넘게 운동을 하면서 전북 팬의 함성, 나갔을 때 만나서 편하게 대해주는 것들을 본다. 너무 친숙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끈끈한, 묘한 매력이 있다. 은퇴 발표를 하지만 정기적으로 전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겠다. 자주 내려올 것 같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텐데?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내려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너무 기대가 된다. 선수들이 많이 울던데 저는 울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쁨의 눈물이면 울 수 있을 것 같다.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트로피를 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화려하게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IMF 시절 입단했다. 해외훈련을 처음 앞두고 여권을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훈련을 했다. 공교롭게도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국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다. 1998년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루 하루가 기뻤던 순간이다. 2000년도가 된 후 브레멘에 진출을 하고 성공하지 못했지만 도전하는 것 자체에 인정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지 못했다. 2003년 군 입대 후 다시 한 번 정신적으로 무장이 됐다. 2006년에는 월드컵만 보고 뛰었다. 다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준비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뛰었다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힘들게 수술을 하고 정상적으로 뛴 후 해외 진출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섣부르게 진출했다. 성남 기억은 많지 않다. 그 이후에 전북이라는 팀을 만나 2009년을 시작으로 8개의 트로피를 보내며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20번이 고유 번호다. 후배에게 물려준다면 원하는 선수가 있는지?
저도 포항에 입단할 때 홍명보 선배가 달았던 번호에 지금까지 애착을 갖고 있다. 20번을 달고 마지막 경기를 뛰는데 믿기 어렵다. 우리 선수들 중에서 최보경이 탐을 내고 있다. 다는 순간 욕을 많이 먹게 될 것이라 이야기해줬다. 젊은 선수들, 축구를 시작하는 선수들에게 갖고 싶은 번호였다는 점을 기분 좋게 생각한다. 전북에서 키우고 있는, 성장하고 있는 선수가 입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자유인이 되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일단 앞에 있는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다음해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축구 외에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칭찬과 비난도 함께 받았다.
많은 분들이 서운해 하셨다. 연락도 많이 받았다.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제 은퇴를 반기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안티팬조차 제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뛰어 왔다.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았다. 축구선수 이동국은 이제 볼 수 없다. 수고했다라는 의미로 박수를 받고 싶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울음) 아버지가 은퇴식을 한다고 하니 본인도 은퇴를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30년 넘게 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애들은 좋아하더라. 아빠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을 위해 쉬면서 커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A급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지만 당장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몇 년 쉬면서 생각하려고 한다. 제가 지도자가 된다고 하면 특별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선수들이 잘하는 것을 찾아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불멸의 기록을 많이 세웠다.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저도 며칠 동안 인터넷을 통해 보면서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생각을 했다. 은퇴를 하는 시점에서 돌이켜 봤을 때 많은 기록을 세웠더라. 800경기 이상 뛰었다는 것을 저도 오늘 아침에 알았다. 한 선수가 800경기 이상을 뛸 수 있다는 것은 1~2년 잘해서 될 일은 아니다.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점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득점 기록에서는 K리그 200골을 넣은 것을 말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유럽에서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까?
최고의 몸 상태로 진출해도 성공 여부를 의심하게 된다. 십자인대 부상 후 한 경기도 뛰지 않고 잉글랜드에 간 것은 일렀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 시기를 늦추고 몸 상태를 끌어올린 후 진출했다면 어떨까 생각은 한다. 도전을 했기 때문에 실패도 이야기할 수 있다. 후배들도 큰 꿈을 갖고 해봤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전화하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도전할 필요는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 같은 정통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K리그에서 스트라이커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모든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한다.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 예전에는 스트라이커가 선호 포지션이었는데 지금은 사이드, 미드필더로 출발을 많이 한다. 선수들도 그렇지만 구단에서도 좋은 스트라이커를 만들기 위해 출전 시간을 보장하면서 키워줄 필요가 있다. 저도 실력에 비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차근차근 성장하며 경쟁하는 힘이 생겼다. 지금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이 있다. 5~10년 내로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오버 42세 룰’ 있다면 출전할 생각은 있다.

-힘들 때마다 아내가 영화찍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멋진 엔딩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번에 부상 이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1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치기 전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늘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마무리는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다.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그 순간에 제가 있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해피 엔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한 마디를 하자면?
축구선수 이동국을 지도해주신 감독님들께 감사드린다. 한 경기를 더 하면 축구선수 이동국 타이틀은 쓸 수 없어 아쉽다. 평생 축구선수로 살다가 은퇴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주셨다. 마지막 한 경기 끝까지 응원해주시면 마지막까지 저도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로 준비하겠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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