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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문명·자연, 빛 통해 어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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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닻미술관 린다 코너 사진전]

한겨레

린다 코너가 2004년 터키 아나톨리아의 옛 카라반사라이(대상들의 숙소)에서 찍은 돔 천장 사진. 돔에 뚫린 원형의 구멍으로 장노출해 여러 겹의 줄처럼 포착된 별들의 흐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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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들머리에 수백년 묵은 이슬람 돔 건물의 천장 구멍을 담은 사진 두 장이 내걸렸다. 두 사진 모두 구멍 주위엔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이 켜켜이 쌓인 세월을 새겼지만, 구멍을 채운 이미지들은 각기 다르다. 하나는 수많은 겹선을 그으며 흘러가는 밤하늘의 별이고, 다른 하나는 구멍을 넘치도록 채우며 주위를 밝히는 태양 빛이다. 히피 출신의 미국 사진작가인 린다 코너(76·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 교수)가 2004년 터키 고원에 있는 옛 상인들의 숙소 카라반사라이를 찾아가 장노출로 찍은 작품이다. 두 사진은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원형으로 순환하는 역사적 시간의 유장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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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1989년 이집트 유적에서 찍은 ‘영혼의 문’. 천장 구멍을 타고 들어온 빛이 문 주위로 문자처럼 오묘한 이미지를 빚어냈다.


40여년간 옛 문명과 자연이 빛을 통해 어우러지는 현장을 찾아 지구촌 곳곳을 누벼온 린다 코너의 수작들이 한국에 왔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닻미술관에 차려진 그의 회고전 ‘리플렉션’이다. 그의 학교 제자인 주상연 관장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세계 사진계에서 특유의 주술적이고 영적인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린다의 작품 세계를 체험할 기회다.

사진기는 현상을 정밀하게 포착해내는 광학기계지만, 쓰는 사람의 눈길과 기법에 따라 인간 내면의 주관성과 심연을 드러내는 힘도 갖고 있다. 일찍부터 천체의 별자리와 고대 유적의 시공간에 푹 빠졌던 린다는 오늘날 사진 매체가 망각해온 심령적이고 영적인 사진 미학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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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코너가 1991년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찍은 고목. 마치 나이 든 사람의 몸을 연상시키는 나무의 뿌리 둥치에 의식용 천이 덮여 있다.


전시장은 그가 40여년간 인디아, 멕시코, 타이(태국), 페루, 이집트, 네팔 등 인류의 원형적 삶과 유적이 남은 장소를 순례하며 작업한 수작 수십점을 내보인다. 천장 구멍을 타고 들어온 빛이 문 주위에 맺혀 문자처럼 오묘한 이미지를 빚어내는 고대 이집트 유적의 ‘영혼의 문’이나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티베트의 탕카를 보관한 성소 안을 환하게 밝히는 사진 등이 인상적이다. 주목할 것은 가장 안쪽 방이다. 그의 내면에 큰 영향을 미친 별자리에 얽힌 소품 100여점이 내걸렸는데, 천장 조명등을 모두 한지로 덮어 편안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린다 코너의 영적인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11월22일까지. 입장료 3000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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