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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르네상스형 인간 이건희, 삼성과 한국사회 다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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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 기여로 삶의 질 높여



이건희 1942~2020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전인적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인으로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런 관심이 실제 투자와 육성으로 이어졌고,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스포츠 - 평창올림픽 유치 위해 지구 다섯 바퀴 해외출장 강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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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 셋째)이 자크 로게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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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탁월한 ‘스포츠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임되면서 국제 스포츠계에서 활동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총회까지 1년반 동안 170일간의 해외출장 일정을 소화했다. 지구를 다섯 바퀴 넘게 도는 강행군이었다. 그 총회에서 평창은 2018년 올림픽을 유치했다. 세 차례 도전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삼성은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4대 프로 스포츠팀뿐 아니라 탁구·레슬링·배드민턴·육상·태권도팀을 운영 중이다. 고교 때 선수로 활동했던 레슬링에 대한 애정도 커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장기간(1982~1997년) 역임했다. 이 기간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황금기를 누렸다. 이 회장은 스포츠 발전에 힘쓴 공로로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명예 IOC위원으로 선출됐다. IOC는 이 회장이 별세하자 스위스 로잔 본부에 조기를 내걸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IOC위원)은 “이건희 회장님은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단을 창단하고 많은 지원을 한 것은 물론 IOC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격을 높인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라면서 “제가 IOC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 회장님이 한국 스포츠에 남긴 유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올림픽 때마다 선수촌에 직접 오셔서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면서 “아테네 금메달 이후에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며 칭찬해 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화 예술 - 리움미술관 짓고, 백남준 등 세계적 거장 전폭적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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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호암상 시상식에서 얘기를 나누는 이건희 회장(오른쪽)과 예술부문 수상자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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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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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고미술 애호가이면서 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삼성문화재단은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용인의 호암미술관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2004년 서울 한남동에는 리움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부인 홍라희 전 관장이 이끈 리움은 대형 전시와 작가 지원으로 미술계에 크게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작가 중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도 있다. 1987년 이 회장을 만나기 전까지 일본의 소니 제품을 사용했던 백남준은 이후 삼성전자 제품을 활용해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보육·의료 - 달동네에 어린이집 기증, 장례식장 밤샘화투 퇴출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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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7월 이건희 회장(왼쪽)과 고건 서울시장이 삼성복지재단이 건립해 서울시에 기증한 신길동 ‘꿈나무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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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인력 활용과 어린이집 설립을 역설하기도 했다. 1987년 신라호텔에서 오찬을 하던 중 창밖의 낙후된 집을 보고 “저기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근무하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맡겨야 할 텐데, 좋은 곳에 맡길 수 없을 것 아니냐”며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어린이집 건립을 지시했다. 이후 삼성은 지금까지 전국 57곳에 어린이집을 세웠다. 한용외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삼성은 1989년 ‘달동네’였던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직접 땅을 사 어린이집을 지어 서울시에 기증했다”며 “직장 내에 어린이집을 지은 것도 삼성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삼성의료원 역시 일류 병원을 만들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설립됐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선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면서 그대로 두는 것은 기업 총수로서 할 일이 못 된다”고 말했다. 세계 40개국의 일류 병원을 벤치마킹한 삼성의료원은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서동면 삼성물산 전무는 “1993년 삼성서울병원 공사 당시 현장을 찾은 이 회장의 모습을 기억한다”며 “회장은 ‘3시간 걸려 3분 진료받는 현실, 보호자 노릇 3일이면 환자가 되는 현실, 촌지라도 집어줘야 좀 어떠냐고 의료진에게 물어보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모든 면에서 세계 초일류 병원을 만들라’는 주문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병원뿐 아니라 부속시설 중 하나인 장례식장 시설과 문화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장례 과정에서 피로에 지친 상주가 샤워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가 출발점이었다. 서 전무는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선 당시 만연했던 화투와 지나친 음주 문화가 사라졌다”면서 “이 회장이 만든 삼성의료원이 새로운 장례문화를 선도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 복지 인프라 구축은 기업이 당연히 나서야 하는 분야가 아닐뿐더러 선진국에서는 기업에 그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이건희 회장은 자신과 삼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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