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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임금 3400만원 떼인 이주노동자에게 “돌아가라”는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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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캄보디아인 A씨(27)는 2015년 6월 한국에 입국해 경기 이천시의 한 농장에서 올해 3월까지 일했다. 그는 2016년 7월부터 3년8개월 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비전문취업(E-9) 비자 만료일인 4월17일을 한달쯤 앞두고 A씨는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 박모씨(56)는 외부에 임금체불을 알렸다며 A씨의 기숙사 문을 망치로 부수고 근무시간과 급여를 적은 공책을 찢어 불태웠다고 한다. A씨는 박씨를 검찰에 특수협박·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 7월 박씨를 시한부 기소중지하고 A씨와 체불임금 배상을 합의하라며 형사조정위원회에 넘겼다. 형사조정은 민사분쟁 성격의 형사사건에 대해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화해하도록 조정하는 제도다.

2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인정된 체불임금만 3400만7158원이다. 지난 8월 첫 조정기일에서 A씨는 체불임금의 절반을 받고 합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두번째 기일은 박씨가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 취소됐다. 돈을 받지 못했지만 A씨는 캄보디아에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안산출장소가 지난 26일 A씨의 비자 연장 신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달 9일까지 한국을 떠나야 한다.

A씨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국내에 체류해야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기타(G-1) 비자를 받아 머물러왔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으로 진정을 접수해 중재 중이거나 민사소송 중인 자”에게 발급하는 G-1-4 비자를 받았지만 이달 기한이 만료됐다. 출입국 당국은 지난번 발급한 비자를 이번에는 연장해줄 수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각 지역 출입국·외국인청의 재량이 너무 커서 비자 심사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출입국 당국의 심사 기준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녹음파일을 보면 지난 22일 안산출장소 직원은 A씨를 지원하는 활동가에게 “저번(G-1-4 비자 발급)에는 특별히 생각해서 해드렸는데 비자를 연장할 근거가 없다”며 “형사소송은 검찰과 피고인이 싸우는 것이고 A씨는 제3자이지 당사자가 아니다. 통장으로 돈을 받든지 하라. 민사소송을 한 것도 아니고 사건을 대리할 변호인이 있으니 A씨가 꼭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출입국 당국에 국내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G-1-11 비자 발급을 요청해왔다. 자신이 단순한 임금체불이 아닌 특수협박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비자는 “심각한 범죄 피해를 이유로 재판, 수사, 민형사상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인 자”에게 발급한다. A씨는 2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계획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형사소송 재판이 언제 열릴지 불투명하고 사건을 변호사에게 위임해 체류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연장을 불허했다”며 “다만 이 경우 형사소송의 성격상 당사자의 체류 필요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으므로 증빙자료를 제출해 불허 결정에 이의를 신청하면 다시 심사해 결정하겠다. 코로나로 인해 A씨는 귀국 항공편을 구할 때까지 출국을 유예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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