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초콜릿부터 고기까지 음식을 출력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코노미조선]
식품 산업의 판도 바꾸는 ‘3D 푸드 프린터’

지난 7월 KFC가 러시아의 기술 스타트업 ‘3D 바이오프린팅 솔루션’과 협업을 발표했다. KFC의 치킨 너겟을 해당 기업의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해 판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치킨과 기술의 생소한 만남. KFC는 이를 ‘레스토랑의 미래’ 계획의 일환이라고 일컬었다.

음식을 만드는 3D 프린터가 식품 산업 판도를 바꿀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일명 ‘3D 푸드 프린터’다. 3D 푸드 프린터는 소비자가 원하는 재료·모양·식감에 따라 음식을 만든다. 대량 수공업 생산에 머물던 식품 산업이 맞춤형 자동화 서비스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스타트업을 위주로 기술이 개발되면서 대기업도 기술력을 차용하는 추세다.

조선비즈

‘비헥스’의 3D 푸드 프린터 ‘셰프3D’ 가 피자를 만드는 중이다. / 테크인사이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D 푸드 프린터가 처음 개발된 시점은 2006년이다. 미국 코넬대의 호드 립슨 교수 연구실이 초콜릿·쿠키·치즈를 원료로 하는 최초의 3D 푸드 프린터를 선보였다. 이후 생명공학부터 식품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군의 연구실·대기업·스타트업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가장 널리 양산된 기술은 과자류와 반죽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3D 푸드 프린터 시장 점유율은 과자류(사탕·초콜릿·케이크 및 페이스트리)가 39%를 차지했다. 뒤이어 반죽류(22.4%), 유제품(16.5%), 과일 및 채소류(10.5%), 육류(7.1%), 기타(4.4%)순이었다.

나사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 일환으로 탄생한 스타트업 비헥스가 과자류와 반죽류를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다. 나사는 2013년 우주 비행사가 먹을 식량을 위해 시스템앤드매트리얼리서치코퍼레이션(SMRC) 연구소에 3D 푸드 프린터를 이용한 음식을 개발할 것을 요청했다. 처음 피자 개발이 성공했고, 곧 스핀오프 기업으로 비헥스가 출범했다. 비헥스는 2016년 12인치 피자를 6분 안에 만드는 기술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우주에서뿐만 아니라 피자 전문점에서도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미국의 피자 브랜드 도나토스피자가 이 기업에 100만달러(약 11억4300만원)를 투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비헥스는 케이크 장식 작업을 하는 기기도 선보였다. 디자인 난이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3D 프린터는 한 시간에 15개에서 21개의 케이크를 장식한다. 기기 판매가는 6만5000달러(약 7400만원)로 비싸지만, 매달 1600달러(약 180만원)를 내고 대여할 수 있다. 안잔 컨트랙터 비헥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제품은 이미 소매점이나 빵집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고객에게 배송 중인 주문 건도 있다"고 밝혔다.

조선비즈

‘푸디니’의 3D 푸드 프린터로 만든 하트 모양 쿠키. / 푸디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콜릿을 제조하는 3D 푸드 프린터 스타트업도 다수 나왔다. 3D 시스템의 ‘셰프제트’는 얇은 설탕 겹을 이용해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고, 내추럴푸즈의 ‘초크에지’는 주사기의 초콜릿을 흐르는 패턴으로 구현한다. 국내에선 3D 프린터 전문 기업 엘에스비(LSB)에서 초콜릿 제조 3D 프린터 ‘초코지니’를 선보였다.

식당에서 널리 쓰이도록 여러 음식을 만드는 3D 푸드 프린터도 있다. 푸디니는 반죽을 이용해 피자·파스타·파이·브라우니를 만드는 ‘내추럴머신’을 개발했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바이플로는 셰프·레스토랑·케이터링 업체에 식품 인쇄 기술을 제공한다. 소비자는 웹 기반 플랫폼에서 재료와 디자인을 고른다. 이는 2016년 전 세계 최초 3D 푸드 프린터 레스토랑 ‘푸드 잉크’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 레스토랑은 영국 런던을 기점으로 여러 도시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3D 프린터가 구현하는 ‘윤리적 음식’

앞으로 주목받는 3D 푸드 프린터 기술은 육류 개발이다.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윤리적 음식’을 구현하는 것이다. 실제 2018년에서 2023년까지 제품 유형별 시장 연평균 증감률은 육류(49.5%), 과자류(48.1%), 반죽류(46.1%), 유제품(43.0%), 과일 및 채소류(42.5%), 기타(40.8%)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리디파인미트가 가장 각광받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리디파인미트는 2021년부터 육류 유통 업체에 식물성 스테이크를 만드는 3D 푸드 프린터를 제공할 계획이다. 프린터 개발 과정에서 스테이크의 모양, 맛, 식감, 조리 과정을 구현하고자 정육점, 셰프, 식품 기술자, 스위스 향료 회사 지보단이 힘을 합쳤다.

조선비즈

레스토랑 ‘푸드 잉크’에서 만든 음식. 3D 푸드 프린터로 만들었다. / 푸디니



벤 시트리트 대표는 3D 프린트된 대체육의 필요성을 두고 "인간은 고기를 먹어야 하지만 고기 자원이 부족하다"면서 "물건을 재활용하고 전기차를 타고 샤워를 덜 하는 방법은 1주일에 햄버거 한 개 줄이는 것만 못 하다"고 했다.

대체 육류는 동물 복지와 환경에 관심 있는 소비자에게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네슬레에서 대체 육류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리디파인미트 또한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2019년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의 투자사인 CPT캐피털이 주도하는 라운드에서 600만달러(약 68억원)를 조달했다. 또한 하나코벤처스와 독일 가금류 그룹 PHW로부터도 투자받았다.

3D 푸드 프린터 기술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도 이용된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업프린팅 푸드는 버려지는 빵·과일·야채 등의 재료로 3D 프린터용 페이스트를 만들어 음식을 재가공한다. 업프린팅 푸드를 설립한 반 둘웨어드 대표는 전 세계에서 완성된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진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업을 시작했다. 베이징의 3D 프린터 회사가 이 과정에서 기술 협업을 했다.

조선비즈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업프린팅 푸드’. 업프린팅 / 푸드



노인 친화형 음식도 개발한다. 독일 업체 바이오준은 3D 프린터로 인쇄한 음식 ‘스무스푸즈’를 독일 내 1000개의 양로원에 제공하고 있다. 치아가 튼튼하지 않은 노년층을 위한 젤리 형태의 요리다. 각종 영양소가 담긴 채소, 찜 음식을 잘게 썰어 합치는 방식으로 제조한다. 이 음식은 냉동 보관했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다. 유럽연합(EU)기구로부터 300만유로(약 43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진행된 ‘노년층을 위한 개인 영양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3D 푸드 프린터는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다. 낮은 제조 속도와 높은 전력 소비량, 높은 가격대로 기술 개발이 좀 더 필요하다. 3D 푸드 프린터를 가장 먼저 개발하기 시작한 립슨 교수는 ‘우리가 정말 3D 프린터로 만든 음식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프로스팅과 초콜릿을 이용한 실험이 10년이 지났는데도 나의 연구실에서 새로운 학생들이 진지하게 기술 개발에 임하고 있다"면서 "진화의 초기 단계의 순간"이라고 적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3D 푸드 프린터 시장은 2020년에서 2040년 사이 매년 26.4%씩 성장할 전망이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소희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io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