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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미소로 떠난 '반도체 신화', 눈물로 보낸 두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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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김윤희 인턴] [이건희 회장 영원히 잠들다]①]


마지막까지 반도체 도전의 역사…이건희 회장 선영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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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차량이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소재 삼성가 선산에서 장지로 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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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들이 떠올린 것은 집념과 도전의 역사였다.

불세출의 기업가, 그리고 1등 DNA 전도사. 삶 자체가 한국의 산업사(史)이자 경제사였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이 2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비공개로 엄수됐다.

유가족과 지인 100여명만 참석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호답게 검소한 장례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遺旨)를 따랐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이 회장의 50년 지기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영결식 추도사를 읊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뛰어넘다)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돌이켰다.

김 회장의 회고대로 영결식 참석자들은 이 회장을 '역사'로 기억했다. 선친 이병철 창업주가 닦은 초석을 딛고 기술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삼성을 세계 1위의 반도체·모바일 기업으로 올려놓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결단력과 추진력, 혁신가의 면모는 재계와 한국 사회에 지워지지 않을 가치로 남았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삼성 반도체 신화의 한 축을 맡았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1990년대 후반 인텔처럼 CPU(중앙처리장치) 사업을 키워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이 회장이 '진 박사가 하고 싶으면 3000억원 정도 까먹어도 좋으니 해보세요'라고 했다"며 "과감한 실행력을 갖춘 탁월한 기업가"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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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비공개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하고 있다. /뉴스1=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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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영결식은 차분하면서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 진행됐다.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이 헌화하며 숨죽여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 차량에 실린 영정사진 속 이 회장은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 재계 친·인척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아들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 등이 참석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도 함께 했다.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 행렬은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이 회장이 생전에 살았던 한남동 자택, 이태원동 집무실인 승지원 등을 정차는 하지 않은 채 차례로 돌았다. 2014년 5월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뒤 6년 5개월 만의 '귀가'였다.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일군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도 들렀다. 이 회장은 1983년 이병철 선대회장과 함께 직접 사업장 부지를 확보하고 1984년 기흥 삼성반도체통신 VLSI공장 준공식부터 2011년 화성 반도체 16라인 기공식과 이후 준공까지 총 8번의 공식행사를 직접 챙길 정도로 이곳에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고인이 2010년 기공식과 2011년 준공식에 참석해 임직원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등 유가족들이 모두 하차했다. 이 회장이 16라인을 방문했을 당시 동영상이 2분여 동안 상영됐고, 방진복을 입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16라인 웨이퍼를 직접 들고 나와 고인을 기렸다. 전·현직 주요 경영진과 임직원들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까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몰리면서 2㎞에 달하는 화성 사업장 도로 양편에 인파가 4~5줄로 길게 늘어섰다.

'마지막 출근'을 마친 54년 삼성맨은 이날 점심 무렵 마지막 종착지인 수원 가족 선산에 도착해 영면에 들었다. 수원 선산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잠든 곳이다.

심재현 기자


[영상1993년 베를린 "삼성 안 변하면 2류"…돌아본 '작은 거인'의 삶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수원 선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수원 선산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잠든 곳이다.

장지는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일군 상징성과 반도체에 대한 고인의 평소 애착 등을 고려한 부인 홍라희 여사의 뜻을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지역으로 반도체 사업을 향한 이 회장의 평생 노력과 열망이 깃든 곳이다. 삼성은 현재 삼성디지털시티로 불리는 수원사업장에 1969년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 이래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이 회장의 발자취는 회장직을 맡은 지난 33년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7년 매출 17조4000억원의 삼성그룹은 지난해 매출 314조원의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수많은 삼성 브랜드가 세계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10만명 수준이던 임직원 수는 40만명으로 늘었다.

재계 한 인사는 "세계 무대에서 '삼성?'이라던 물음표를 '삼성!'이라는 느낌표로 바꾼 이가 바로 이 회장"이라고 말했다.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끊임없는 혁신이었다. 세간에서 "괄목상대", "이만하면 됐다"는 얘기가 나올 때 이 회장은 위기론을 일깨웠다. 이건희 하면 떠오르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포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이 회장 스스로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안주하는 삶을 배척한 혁명가였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업을 밀고 나가는 집념이나 추진력은 주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부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마저 위험이 크다며 결정을 미룬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면서 1974년 사비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일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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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소재 삼성가 선산에서 (왼쪽부터)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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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동영상편집=김윤희 기자


'딸들 광고 좀 하겠다'던 이건희 회장… 눈물로 보낸 두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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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사진 중앙)이 2010년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2010)에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CEO, 왼쪽)으로부터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 사장,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 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직책은 당시직책)/사진제공=삼성



10년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에 당시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전무(당시 직책),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등 두딸의 손을 잡고 전시장을 방문했다.

이건희 회장은 오른손엔 장녀인 이부진 전무를, 왼손엔 차녀인 이서현 전무를 각각 잡고 전시장을 1시간 가량 둘러봐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회장은 딸들과 함께 온 이유에 대해 "우리 딸들 광고 좀 해야겠습니다"라고 부정(父情)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당시 '자식들이 일을 잘 배우고 있다고 보시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아직 배워야죠. 내가 손잡고 다니는 것이 아직 어린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 회장이 이날 두 딸의 손을 잡고 1시간 가량 CES 전시장을 돌아본 것은 말 그대로 '딸들을 광고하거나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자신의 불편한 걸음에도 불구하고 딸들의 부축을 받으며 전세계 IT 기업의 트렌드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두 딸의 손이 아버지를 받혀주는 모습이 이를 잘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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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사진 중앙)이 2010년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2010)에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CEO, 오른쪽)으로부터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당시 직책),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 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최 사장/사진제공=삼성



이 회장은 걸음이 불편할 때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해 해외출장을 가거나 들어올 때도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을지언정 지팡이는 사양했다. 2006년 발목을 다쳐 귀국길에 휠체어를 탄 것 외에 쓰러지기 전까지 어디를 나설 때도 이 회장은 휠체어도 절대 타지 않았다.

'딸들 광고 좀 해야겠습니다'라는 그의 말 속에는 딸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아버지와 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숨긴 측면도 있다.

이 회장은 유독 딸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삼성가의 전통이기도 하다. 삼성가는 여느 그룹과 달리 딸들에 대한 경영 참여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대 이병철 회장 때도 장녀인 이인희 한솔 고문과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딸들에게도 경영 참여의 길을 열어줬다.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게도 기업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고인은 자신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 '여성 없이 미래 없다'는 글에서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여성의 역할이 늘고 파워도 더 강해진다. 몇 년만 지나면 여성인력 중에서 경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여성인력 활용이 선진국의 척도가 된다"고 했다.

이런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남녀차별 관행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며, 국내 대기업 최초로 여성공채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28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자신들을 광고하겠다던 아버지와의 이별에 두 딸은 목놓아 울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녹초가 된 여동생인 이부진 사장의 팔을 부축해 장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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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세번째)이 28일 수원 선영에서 진행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하관식 장소로 이동하는 중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 두번째)에게 팔을 내주며 걷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오열하며 탈진한 듯 어머니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오른쪽 두번째)과 이 부회장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왼쪽 첫번째는 차녀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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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선임기자

심재현 기자 urme@mt.co.kr,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김윤희 인턴 realkim1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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