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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美 "WTO총장에 유명희 지지" 유럽 "이제와서 왜 이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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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WTO 총장에 유명희 지지”

WTO “예정대로 내달 9일 선출”

만장일치 안 되면 투표 가능성도

미국 대선 결과도 영향 미칠 듯

중앙일보

WTO 사무총장에 출마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네바 주재 각국 대사 초청 리셉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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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다수가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출신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지지한 가운데 미국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경쟁자인 한국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한다면서다.

미국은 28일(현지시간) 열린 WTO 전체 회원국 대사급 회의에서 이런 의사를 밝혔다. WTO 사무총장 선거는 회원국들에 선호도를 조사, 지지를 적게 받은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들이 대거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했다. 통상 수순대로라면 유 후보가 사퇴하고,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단독 후보로 나서 일반이사회 표결을 통해 선출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로 차기 WTO 수장 선출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WTO 사무총장 선출은 컨센서스(consensus·만장일치 합의)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식적인 반대 사유는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의 무역 분야 경험 부족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유 본부장은 25년간 통상 분야에서 활동한 전문가”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오콘조이웨알라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WTO가 친중적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따라 중국이 지지하는 나이지리아 후보에게 반대하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외교가에선 나온다. 중국·EU 등과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WTO 무력화 시도라는 관측도 있다. 미 상무부 고위 관료 출신의 윌리엄 레인시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이는 ‘차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기어에 모래를 뿌려 버리겠다’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접근”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사급 회의에선 10여 개 국가·기관 대사들이 발언 기회를 요청해 미국을 비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회의 참석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 유럽 국가 대사는 “반대하려면 진작 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는 취지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미 고위 관료는 “WTO가 만장일치를 얻지 못한 후보를 추대하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WTO 측은 우리의 반대를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WTO는 일단 예정대로 11월 9일 총장 선출을 위한 특별 일반이사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각국과 협의해 만장일치 합의를 이끌어내 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WSJ는 “대사급 회의 참석자들은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투표를 강행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이라는 WTO의 원칙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론적으론 투표도 가능하고, 그럴 경우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선출되겠지만 향후 그가 추진하려는 WTO 개혁 계획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유 본부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끝까지 간다’ 기조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다른 회원국들을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미국만 믿고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 대한 반대를 고수할 경우 WTO 수장 공백은 장기화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에도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막아 1년 가까이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관건은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가 될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WTO 회원국들은 회의 자체를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1월 20일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럴 경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를 받은 유 본부장 입후보를 계속 유지할지를 놓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혼란을 우려, 그 전에 선호도 조사에 승복해 유 본부장이 사퇴하는 방안도 정부 일각에선 거론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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