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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 ‘김별명’… 떠나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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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불멸의 228골’ 이동국

월드컵 제대로 활약 못해 아쉬움

우타자 최다 2209안타 김태균

KS 우승 이끌지 못해 큰 짐으로

동아일보

이동국

《프로축구의 이동국과 프로야구의 김태균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각각 23년, 20년을 프로 선수로 살아오며 각종 기록을 보유한 것은 물론이고 ‘연봉킹’ 자리에도 올랐지만 풀지 못한 한도 있다.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별들이 마지막까지 아쉬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도 내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올 시즌을 끝으로 23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라이언 킹’ 이동국(41·전북). 1998년 혜성처럼 프로축구 K리그에 데뷔한 후 실패와 재기를 반복해 온 그는 나이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멀리 내다보고 살지는 않았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눈앞의 경기에만 집중한 것이 ‘롱런’의 비결”이라고 했다.

K리그 개인 통산 최다골(228골)과 최다 공격 포인트(305개) 등 화려한 업적의 이면에는 ‘비운의 스타’라는 낙인을 지우려 발버둥친 날들이 있었다. 특히 ‘꿈의 무대’라는 월드컵과는 지독하게도 인연이 없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최연소 출전 기록(19세 52일)을 작성하며 스타로 떠올랐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게으르다’는 평가와 함께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몸 상태가 최고였지만 부상으로 낙마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2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하지 못했다. 골잡이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월드컵 본선에선 무득점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2007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에 입단했으나 정규리그 무득점에 그친 뒤 국내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런 아픔들은 ‘게으른 천재’를 ‘불멸의 오뚝이’로 변화시켰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함께 연습 때도 실전처럼 몸을 던지며 기회(경기 출전 등)의 소중함을 아는 선수가 된 것이다. 월드컵에선 불운이 겹쳤지만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늘 간직한 이동국은 국내 선수 중 역대 최장 기간 국가대표팀 발탁 기록(20년·A매치 105경기 33골)을 남겼다. 그는 “힘들 때는 나보다 더 큰 좌절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한 후 7번의 K리그 우승을 달성한 이동국은 다음 달 1일 대구와의 올 시즌 최종전으로 작별을 고한다. 이 경기에서 선두 전북은 비기기만 해도 사상 첫 정규리그 4연패를 달성한다. 이동국과 함께 울고 웃었던 팬들도 이별 준비를 마쳤다. 축구 팬 김영진 씨(34)는 “이동국 하면 장기인 발리슛으로 많은 골을 넣은 화려한 플레이로 유명하지만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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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프로야구에서도 한 명의 스타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한화의 상징 김태균(38)이다. 천안 북일고 출신으로 2001년 프로에 데뷔한 김태균은 국내 무대 18시즌 동안(2010, 2011시즌은 일본 롯데 소속) 한화 유니폼만 입었다. 현역 시절 다양한 별명으로 ‘김별명’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던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별명으로 ‘한화의 자존심’을 꼽는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금메달) 등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던 김태균은 KBO리그에도 많은 발자국을 남겼다. 역대 최다 안타 3위(2209안타), 최다 누타 4위(3577루타) 등 주요 부문 상위권에 올라 있다. 2209안타는 오른손 타자로는 리그 최다 기록.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은 “장타력이 있는 타자는 선구안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김태균은 모두 갖췄다”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선수로서 한 번도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지 못한 건 영원히 풀지 못할 한으로 남았다. 김태균은 “팀의 중심 타자이자 주축 선수로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며 자신의 야구 인생에 30, 40점을 매기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의 모습은 귀감이 되고 있다. 타격이 잘되지 않았을 때는 너무 잠이 안 와 방망이를 안고 잠을 청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절박함을 지녔다. 그는 은퇴를 결심하고도 구단이 공식 발표할 때까지 2군에서 평소처럼 훈련을 했다. 열심히 준비하는 후배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앞으로 단장 보좌 역할을 맡는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우승을 묵묵히 돕겠다는 각오다. 한화 팬 이정훈 씨(41)는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에도 4번 타자로 꿋꿋이 팀을 이끌었던 김태균은 팬들의 마음속에는 90점이 넘는 한화 레전드”라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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