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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좀 만졌다고 신고했냐" 성폭력 피해 여중생 울린 익명 채팅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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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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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A(14)양이 또래 친구를 사귀고 싶어 익명 소통 애플리케이션인 에스크(asked)에 가입한 건 지난해 10월. 10대~2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앱에선 상대에게 익명으로 질문을 올릴 수 있다. 다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상대의 신상을 아는 반면 질문을 받는 사람은 상대를 알 수 없다. 성폭행 피해 경험 때문에 친구 사귀기를 꺼리다 용기를 냈지만, A양은 이 앱에서 다시 한번 끔찍한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A양에게 2차 가해성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질문자들은 A양을 향해 “(가해자가) 네 몸 좀 만질 수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경찰에) 신고를 해?” “전학 갔다고 선배 무시하냐” “어디 사냐”는 말을 하며 조롱했다.



성폭행 피해자에 “그걸 가지고 신고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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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인 중학생 A(14)양이 익명 소통 애플리케이션 에스크(asked)에서 받은 질문이다. [사진: A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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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은 30일 “경찰서에도 신고하려고 준비 중인데 IP추적이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성폭력 사건 이후 잠시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깐 앱에서 이런 비난을 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특히 A양은 “나의 성폭행 피해 사건을 알고 있는 걸 보면 같은 반 친구나 가까운 지인일 수 있는데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나를 비난하는 것이 끔찍하다”고 덧붙였다. A양은 해당 앱을 삭제했다.



익명에 숨어 악플·성희롱…성범죄와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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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질문 앱을 통해 성적 모욕과 외모 비하ㆍ인신 공격 등이 이어지자 일부 SNS 유저들이 IP 추적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있다.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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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소통 앱은 보통 페이스북 아이디를 연동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가입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지인들과 익명으로 주고받는 놀이 문화로 이용하고 있다. 질문과 답변은 다른 이들에게도 공개된다. 이런 익명 채팅 앱을 통해 피해를 본 이는 A양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아이디만 있으면 추가 신상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적 모욕과 외모 비하ㆍ인신공격이 발생하고 있다. 한 온라인 맘 카페에는 “중학생인 아이가 익명 채팅 앱을 깔았는데 입에 담을 수 없는 성희롱과 비방이 난무했다. 신고가 가능하냐”는 글이 올라왔다. SNS에는 'IP 추적하는 법' 등을 공유하며 가해자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익명 채팅 앱이 성범죄와도 연결된다며 우려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예전보다 최근에 에스크 앱 등을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성 착취 피해 청소년들이 해당 앱을 통해 성매매 제안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명 인증을 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가부, 12월 11일부터 랜덤 채팅앱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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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4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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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채팅 앱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9월 여성가족부는 안전하지 않은 랜덤 채팅앱(불특정 이용자 간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11일 여가부가 발표한 조건은 ▶사용자 본인 인증을 하지 않거나 ▶대화 저장 기능이 없으며 ▶불법 행위 발생 시 신고 기능이 없는 앱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3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12월 1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유예 기간 이후에도 기술적으로 개선하지 않아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해당하면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를 두어 청소년이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300~400여개의 앱을 대상으로 안내 공지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에스크 앱도 포함돼 있다. 위반 행위를 지속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사법기관 수사 의뢰 및 형사 고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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