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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갤러리 산책] 제주바람 품은 황토빛, 캔버스 찢을듯 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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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개인전 '시대의 빛과 바람' 15일까지 가나아트…50세 이후 作 40여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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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폭풍의 바다', 1989, Oil on canvas, 91x117㎝(5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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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화폭을 가득 채운 황토빛. 타오르는 불꽃이 연상될 정도로 강렬하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노란 밀밭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故) 변시지 화백(1926~2013)이 그린 노란빛은 고흐의 노란빛과 차이가 있다. 고향 제주의 황토빛을 담았기 때문이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곳. 변 화백의 황토빛은 거센 바람을 품었다. 금방이라도 캔버스를 찢어버릴 듯하다.


변 화백은 1926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1931년 가족이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데라우치 만치로 도쿄대 교수의 문하생으로 후기 인상파의 표현주의 기법을 익혔다.


그는 1947년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일본미술전람회(日展)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했다. '여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이듬해에는 광풍회전(光風會展)에서 역대 최연소로 최고상을 받았다. 1912년 창설된 광풍회는 당대 일전 주관 일본 최고의 중앙 화단으로 서구의 인상주의를 받아들였다. 변 화백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 작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후기 인상파의 대가 반 고흐를 꼽았다.


변 화백의 작품 세계는 일본 시절(1931~1957), 서울 시절(1957~1975), 제주 시절(1975~2013)로 나뉜다. 가나아트와 공익재단법인 아트시지가 공동으로 기획한 변시지 개인전 '시대의 빛과 바람'이 오는 15일까지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린다. 변 화백이 50세 되던 해 제주로 귀향해 38년간 머물며 그린 40여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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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폭풍', 1989, Oil on canvas, 160x130㎝(10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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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바닷가의 추억', 1995, Oil on canvas, 45x130㎝(변형5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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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화백은 1957년 서울대 강사 제안을 받고 귀국했다. 1975년에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제주로 귀향했다. 그는 제주로 귀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석양에 물든 바다와 대지가 온통 노란색임을 느꼈다. "제주도는 태양광이 강렬해 모든 고유색이 변화한다. 하얀 모래가 강렬한 빛 때문에 황색으로 변화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 변 화백이 남긴 말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天地玄黃).' 전시를 기획한 송정희 공간누보 대표는 변 화백이 "황토빛을 생명의 색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거센 바람을 품은 변 화백의 그림 속 나무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에 맞서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인다.


"작가에게 바람은 단순한 자연, 물리적 바람이 아니라 마음의 바람이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는 환경 자체가 척박하지만 외부로부터 많은 위협과 압력이 가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생존하고자 몸부림친 사람들의 상황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소재가 바람이다. 작가는 '바람 부는 제주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독, 인내, 불안…, 이런 것들을 표현하려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 대표의 전언이다.


변 화백의 큰아들 변정훈 아트시지재단 대표가 들려주는 일화도 흥미롭다. 화백의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아버지가 소학교 때 도시락을 싸가면 친구들이 김치,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니까 도시락을 안 싸가고 점심시간이 되면 집까지 뛰어와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갔다고 한다. 그렇게 1~2년을 뛰었더니 굉장히 힘이 세져 달리기에서 1등을 휩쓸고 씨름대회에 나가 상급 학년 대표들도 제압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학교 2학년 때의 씨름대회는 어린 변시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상급 학년 학생과 붙었다가 다리를 접질려 뛰어놀 수 없게 됐다. 이후 변시지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송 대표는 "변시지 선생이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새롭게 조명해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전시를 마련했다"며 "변 선생의 제주 시절 주요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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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태풍', 1982, Oil on canvas, 182x228㎝(15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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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소식', 1986, Oil on canvas, 112x145㎝(8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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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해촌', 2002, Oil on canvas, 41x53㎝(10호) [사진=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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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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