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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루이스칸의 세례를 받은 건축가 김광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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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아키텍트-60] '건축 의장'에서 '의장'은 두보의 시, '의장참담(意匠慘憺)'에 나오는 말이다. 의장(意匠)은, '어떤 일을 고안하는 데 매우 고심(苦心)하다'는 뜻이다. '디자인'을 뜻하기도 한다. 이미지(意)를, 형태로 완성한다(匠)는 말로 건축 설계 본질을 나타낸다.

현대 건축가는 자신 속에 잠재한 물질과 실체에 대한 감각만이 아니라 전통의 의미도 잃어가고 있다. 그의 저서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은 '건축의 근원'을 묻고, 변함없는 '건축의 힘'을 탐구하며, 시대의 바닥을 꿰뚫는 '공동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기도 여주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사도 모후의 집'(2004·2005년 가톨릭미술상 본상)은 수도원이라는 형태적 관념에서 벗어나 공간적, 영역적으로 해석하였다. 수도 생활 근거지이면서 '미디어를 통한 선교'라는 수도회 정신을 건축적으로 번안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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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건축가가 설계한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사도 모후의 집`(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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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서저 지형을 다양한 형태 마당으로 극복하고 있다. 입구 출입 마당, 계단을 올라가면 만나는 나무널 마당, 두 동의 건물 사이 마당 등 여러 종류를 두어 수도자들이 산책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묵상하는 공간 배치를 고려하였다. 지세를 활용하여 전례, 묵상, 친교의 영역으로 구분하였고, 수도자의 생활, 신자들의 영성 훈련 공간을 겸한 피정의 집을 기능과 영역을 기준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였다.

남쪽 건물은 수녀들의 숙소이면서 공부방, 북쪽은 묵상을 위한 공간이다. 두 동의 건물은 식당, 강의실 있는 1층에서 연결된다. 식당 전면의 마당은 사제관 위 데크로 이어지고, 크고 작은 마당이 지형 차이를 이용하여 남북으로 이어진다.

성당 전면은 노출 콘크리트, 외벽은 고흥석, 벽돌,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측면은 라임 스톤에 삼나무를 끼어 마감하였다. 익숙한 재료와 간결한 윤곽의 입체가 빛을 받아 거룩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미사 전례 중심인 제대, 독서대, 성수대 모두 직접 디자인하였다. 피정의 집 외곽에 봉안당이 마련되었다. 대지 외곽 길은 이 봉안당을 통해 있다. 앞마당은 추모 공간이다. 이 건축은 김광현에게 '공동성의 건축'에 대한 교과서와 같은 집이다.

외교 문서를 보관하는 서울 서초동 '외교부 외교사료관'(2006년)은 수장고, 전시장, 사무실로 이루어져야 하고 적은 공유 면적을 극복하는 게 과제였다. 김광현은 건물은 언제나 주변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풍경과 재료와 사람이 엮어지며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했다. 외교사료관은 북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앞에는 외교센터와 외교안보연구원이 있다. 건물은 외교센터 중심축에 맞추어 주변 고속도로와 나란히 앉혀야 했으므로, 세 개 건물이 L자로 대지 전체를 에워싸게 되었다. 해당 용지가 평지에서 경사지로 변경되어 주진입용 옥외 계단 수가 많아졌고, 진입 과정에서 다소 건물이 높아 보이며, 남쪽 선큰 가든이 깊어지게 되었다. 건물의 여러 기능은 문서 보존서고를 위해 존재한다. 지상면적 중 닫힌 서고가 약 반 정도이고 공용 면적이 많지 않아 진입동선 방향을 따라 크고 작은 공간이 전개되게 하였다. 1층 로비 앞의 넓은 마당, 외벽과 서고 사이 마련된 좁고 길게 지하에서 천장까지 트인 공간과 지하로 내려가는 직선 계단, 선큰 가든을 통해 풍경을 만들어내야 했다. 1층의 전시관도 외부에 개방된 것으로, 방문객이 좁은 로비의 연장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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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건축가가 설계한 외교연수원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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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였고, 보존서고에는 내후성 강판을 썼다. 서고의 닫힌 매스를 조형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내부에도 연장되도록 했다. 샌드 블러스터 처리를 한 1층 전시관의 외부 유리는 서고의 매스가 독립되어 보이게 한다. 서측면은 불규칙하게 마감된 지하층의 화강석 마감을 포디움으로 삼아 노출 콘크리트 벽과 강판의 매스가 올라가 있는 단순한 형태를 구사하였다. 정면인 동측면은 서고 앞 유리면과 사무실 영역 노출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되어 있다. 유리면은 평탄하지 않고 톱니 모양으로 분단시켜, 입체감을 부여한다. 자칫 분리되어 보일 좌우의 두 부분은 콘크리트 프레임을 불규칙하게 배열된 갤러리 행거 도어로 완화하였다.

전북 익산 천호 성지 내 '천호 부활 성당'(2007·2008년 한국 건축가협회상) 설계를 맡은 건 행운이었다. 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안을 보여줄 때마다 기존 건물처럼 지붕이 평평해 비가 잘 새면 어떻게 하나, 통풍은 잘 되는가 하며 걱정했다. 최종안은 15분 만에 만들어냈다. 이를 본 주교는 연면적 600평(1983.47㎡) 성당 설계를 맡겼다. 시공이 되고 형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현장을 찾았다. 시공 중 인근에 산불이 났다. 이상하게 성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불이 꺼졌다. 성당은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입구는 4m, 제단 외벽은 13m로 경사져 있다. 제단 벽면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다면체 구조로 지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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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건축가가 설계한 `천호 부활 성당`(2007년) /사진제공=박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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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중심이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이다. 성당 내부 양쪽 벽 아래 가로로 뚫린 창을 투과한 빛이 회중석을 수평으로 가로지른다. 제단 한쪽 벽면에 수직으로 꿰뚫은 색유리 창을 통해 제대를 비추는 빛이 하느님의 현존과 하늘나라에 속한 순교자들을 드러낸다. 수직과 수평의 창을 투과한 빛은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성당 내부는 이 십자가의 빛만으로도 충만하다. 벽과 천장 모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나타내며 가장 완벽한 구도인 삼각 모양으로 조합돼 있다. 내부는 홍송으로 마감했다.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제대를 승인받지 못했고, 설계 개념에 맞는 사양의 의자가 배치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건축 이론가'는 아니다. 필립 존슨(1906~2005), 로버트 벤추리(1925~2018), 알도 로시(1931~1997)는 이론을 겸비한 건축가이다. 뜻이 있어야 붓이 가듯이 넓은 의미에서 갖추어야 될 이론이 필요할 뿐이다."

"건축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건축 교육은 이러한 해석의 여러 가지 방식을 제안하고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설계 잘하는 이들만 예뻐해서는 안된다. 꼭 건축가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배운 건축을 통해 다른 부분(부동산 등)이 선해지는 방법이 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지 않나. 제자라고 해서 그들을 거느릴 입장이 아니다.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건축 교육은 비건축학도들에게도 필요하다. 이들 대상으로 작년 2019년 한 해에 총 90여 회의 강의를 했다.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사회 제도, 정책이 바뀐다."

2018년 마지막 강의를 가졌다. 서울대 미술관 오라토리엄은 내외부 인사 400여 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찼다. commonness가 공동체적 소통과 일치를 공언하는 communication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일종의 예술가적 퍼포먼스였다.

그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아프리카 케냐의 한 학교, 벽이 없는 지붕과 기둥만이 있는 건물을 띄웠다. 건축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 가운데 공간 공유의 자연스러운 기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화면이었다.

"검은 먹구름이 끼면 이 학교 학생들은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지붕이 빗물을 모아 귀중한 식수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농구대가 설치된 지붕 아래의 공간은 젊은이들에겐 체육관으로, 어른들에겐 영화관으로도 활용된다. 둥글게 하나로 이어진 지붕과 원형 건물 중앙의 공터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었다."

김광현은 2018년까지 서울시립대와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고 200명의 석·박사를 배출했다. 건축교육자로서의 공식적인 임무는 끝났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행보가 생의 후반부에 더욱 가열차듯이 그는 공간을 자신의 연장(an extension of self)의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활동하고 있다. '성당, 빛의 성작-공간과 전례'를 금년 중 출간 예정이며 새로운 가톨릭 건축물 및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건축 프로젝트의 업적을 계속 쌓아나갈 듯하다.

[프리랜서 효효]

※ 참고자료 : 영화 <루이 칸의 타이거 시티(Louis Kahn's Tiger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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