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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겸재 정선(謙齋 鄭敾)을 잇는 `오리엔탈 특급` 화가 정진용(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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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진용 작 `인상적벽` 145×111.5㎝×3, 수묵.아크릴릭 과슈.크리스털 비즈.천에 캔버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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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미술기행-59] 모 음악 밴드의 동영상부터 틀었다. '동양적 정서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서도 재료 등으로 동양적이라고 주장하면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먹힐 리 없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서양 작가들도 동양을 모르면서 먹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

정진용은 동양화가지만 서양화 기법으로 작업을 한다. 설치, 영상,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스펙트럼은 넓다. 정진용은 학부, 대학원, 박사까지 동양화를 전공했으니 바탕은 동양화가일 수밖에 없다. 동양화를 공부한 많은 이들이 서양화로 옮겨가면서 어떻게 그릴 것인지를 고민한다. 현대미술의 중심에 훅 들어온 정진용은 애초에 이런 경계나 구분이 없다.

전북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진용은 최근 서울 개인전에서 그동안 즐겨 사용하던 검은색을 배제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화려하게 그려진 이미지 위에 0.2㎜ 크기의 미세한 크리스털 비즈가 표면을 덮고 있다. 비즈 작업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의식과 시간을 멈추고 가두는 '정지와 감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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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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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변화만 있는 게 아니다. 주제도 많이 바뀌었다. 작가는 동양 전통의 산수화와 일월오악도, 십장생을 모티브로 판타지적 경관을 구현한 호연지경(浩然之景) 시리즈와 한때 화려한 서양문화를 대변했지만 영화 속 세트장에서나 등장하는 샹드리에를 색채와 점묘로 표현한 행오버(hangover) 시리즈를 선보였다.

정진용은 동양화 장르 중에서도 산수화를 좋아한다. 내년 1월까지 전시 예정인 전북도립미술관 '예술과 에너지' 전에는 '호연지경:인상적벽'(435×111)을 출품했다. 정진용이 창출하는 산수화는 명작의 핵심인 이미지들을 한 화폭에 합쳤다. 가장 이상적인 선경(仙境)이 구현되었다.

조선회화사 최고의 금자탑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은 작품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에서 금강산을 집어 넣었다. 내금강으로 접어드는 관문인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조망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금강산의 삼엄한 백색 바위 봉우리들을 강한 필법으로, 숲이 우거진 흙산은 부드러운 묵법으로 처리하여 음양의 대비와 조화가 돋보인다.

실제 단발령에서는 금강산이 보이지 않는다. '산수화는 어치피 판타지'라는 게 정진용의 생각이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드러나는 엄청난 판타지는 서구적 풍경화이자 산수화다.

자칫 중국 중심의 동양 세계관, 동양 미학과 구분하고 한국성을 강조하기 위해 민화와 평면적인 십장생을 소재로 넣었더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중국 산수화는 관념주의고 한국 산수화는 실경주의이다.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는 한 폭에 회오리치는 소용돌이 자연 현상처럼 이미지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건 매의 눈처럼 드론의 카메라 시점이 있어 가능하다.

정진용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통상 동양화에서는 여백으로 처리하는 하늘이다. 마치 서구의 인상주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화폭은 이분 구도로 대별된다. 하단은 평온하나 상단의 하늘은 뭔가 엄청난 게 일어날 조짐과 암시를 담고 있다. 2016년 촛불시위를 광화문과 그 너머 하늘로 대비시켰다.

그가 그린 뉴욕의 WTC, 숭례문, 쯔진청(紫禁城) 등 건축물이 갖는 아름다움 이면에 깃들인 짙은 공포가 과거지향적이었다면, 권력에 대항하는 현실의 풍경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을 매운 수백만의 촛불이었다. 긴 겨울을 관통할 동안 거대 권력을 향해 뚫려 있는 큰 길 위와 광장, 골목골목까지 군중들의 촛불이 들어차 있었다. 작고 나약한 촛불들이 모여 만든 빛과 함성은 경이를 넘어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마치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큰 길의 갈래와 그 길을 메워버린 촛불들의 행진을 보면서 봉건 시대를 저물게 한 옛 거리들과 사람들의 횃불들이 오버랩되었다.

정진용만의 동양미학적 정신성과 넉넉한 사유의 폭, 활달한 붓터치만이 구현 가능한 화면이 펼쳐져 있다. 동시대에 대한 형상과 사유의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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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작 `촛불행렬` 180 x140㎝, 수묵.아크릴릭 과슈.크리스털 비즈.천에 캔버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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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이 위대한 건축물로 상징되는 폭력과 파괴에 대한 관심은 9·11테러 사건 이후부터였다. 현재 눈앞에서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바로 화판 앞에 앉았다. 120호 사이즈의 장지에 사흘 동안 매달려 그렸으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충격적인 파괴의 뉘앙스가 부족한 것이었다. 종이에 불을 붙였다. 장지는 꽤 두꺼워 스멀스멀 타들어 갔다. 그림 위에 뒤덮인 물감층을 녹이고 태우면서 점점 번져나가 반 가까이 불길이 번졌을 때 껐다. 그렇게 탄생한 '911' 작품에 대해 남의 나라 일에 왜 관심을 갖느냐는 황당하고 왜곡된 잣대가 디밀며 들어왔다.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들이 미학적으로는 찬란하게 빛날 때가 있다. 파괴와 해체의 경계에서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 과정이 없다면 희망도 미래도 불가능하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전쟁과 재난은 멈출 수 없고, 그러한 상황이 재발해서는 안 되는 기원으로 예술가는 그림을 남긴다.

피카소가 위대할 수 있는 것은 '게르니카'와 '한국에서의 학살' 같은 전쟁과 이념, 인간의 광기에 묻혀버렸을 제노사이드(genocide)를 강렬한 구도와 무감각할 정도의 색채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정진용에게 9·11과 같은 감정은 몇 년 뒤 숭례문 방화 사건 때 일어났다. 상징적 국보1호가 불타고 있다는 사실은 뭔지 모를 분노와 괴로움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휘몰아쳤다. '불타는 숭례문' '버닝게이트(Burning Gate)'(2008)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평지인 중국 베이징 쯔진청 전경을 경산 언덕 위에서 보면 모든 가옥들이 성 발 아래 놓여있는 듯하다. 압도적인 황제의 권위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한다. 정진용은 '쯔진청'을 위에서 내리누르고 압박하는 듯한 인민들의 무리처럼, 백성들의 아우성처럼 그려내었다. 투시가 들어올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재난적 상황과 부딪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리적 상황에 직면했다. 2년이 지나서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2017년 이영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환락원'으로 발표되었다. 억울한 영혼들이 '환생적 낙원'에 머물기를 소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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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작 `절대적 타자(Absolute Otherness)` neonsign &wall painting_Dimensions variable(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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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전시장 벽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양옆의 벽에 노란빛 네온사인이 걸렸다. 'GODDOG'로 쓰여진 글자가 불교의 상징인 '만(卍)'자와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그리며 어둠 속에 빛을 내고 있다. 신(GOD)과 개(DOG) 사이, 정면의 벽에 그려진 작은 노란 리본을 따라가면 문장이 적혀 있다. "절박한 그 순간에 아이들 대부분이 신을 떠올리며 구조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받지 못한 아이들이 수백이다. 그들을 구조했어야 할 주체들은 모든 것이 신의 섭리인 것 마냥 손 놓고 가만히 앉아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이 얼마나 '개' 같은 현실인가."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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