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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갤러리산책]터전에서 안식처로…'무민 골짜기'로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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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무민' 가족의 모험, 그 원작을 만나다 '무민 오리지널: 무민 75주년 특별 원화전'

내일부터 그라운드시소 성수 특별전…펜화·캐릭터 원화 등 250여점 전시

토베 얀손이 은신처로 그린 무민 골짜기…아늑한 터전에서 삶 돌아보는 안식처로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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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그림 형제 야코프(1785~1863)와 빌헬름(1786~1859)을 시작으로 동화에서 가족은 억압적 존재로 그려졌다. 집은 미래를 찾기 위해 도망쳐야 할 곳이었다. 사랑을 가로막는 계모나 꿈을 짓누르는 아버지가 있었다.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은 이런 흐름을 거부했다. 그는 출세작 '무민(Moomin)' 시리즈에서 가족을 단란하게 표현했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개성을 존중하며 끈끈한 유대를 다진다. 혈연을 뛰어넘는 사랑도 보인다. 생김새나 차림이 달라도 따뜻하게 품어준다.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무민 가족이 서울에 온다. 13일부터 서울 성동구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무민 오리지널: 무민 75주년 특별 원화전'이 열린다. '무민' 시리즈 펜화와 캐릭터 원화 약 250점을 전시한다. 핀란드 무민캐릭터스와 얀손가(家)의 소장품이다. 관계자는 "3D 애니메이션, 미디어아트 등 다채로운 전시 콘텐츠로 관람객의 오감을 사로잡겠다"고 말했다.


무민은 토실토실하고 뽀얀 몸에 선한 눈망울을 가진 캐릭터다. 1945년부터 소설 아홉 권, 연재만화 여섯 권, 그림책 네 권, 극장용 애니메이션 다섯 편 등으로 소개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주된 내용은 소소한 모험이다. 가족ㆍ친구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사랑과 우정, 공존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모험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1946년부터 1970년까지 출간된 '무민' 시리즈 아홉 편의 주요 무대를 공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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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이 무민 골짜기다. 전란에 지친 얀손이 은신처로 그려낸 곳이다. 그는 첫 번째 '무민' 시리즈인 '무민 가족과 대홍수' 개정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39년, 전쟁이 한창이던 겨울이었어요. 모두 하던 일을 멈췄지요. 그림 그리기도 완전히 부질없는 짓 같았어요. 갑자기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 거기에 이어질 이야기는 동화여야 했어요. 저는 저 자신을 조금 봐주는 의미로 왕자와 공주, 어린이 대신 화가 나 있는 저만의 캐릭터를 만화에 등장시켰고 '무민트롤'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출간 당시만 해도 '무민' 시리즈는 현실 도피를 위해 쓰였다는 이유로 많이 비판받았다. 소설에 교훈적 의도가 없으면 뒷말이 나오던 시기였다. 얀손은 그걸 알면서도 철학이나 정치 성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저 없이 밝혔다. "재미있으라고 쓴 거예요.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무민 가족과 대홍수'에서 무민들은 대홍수로 육지가 잠겨버리면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무민트롤과 무민마마는 해티패티 세상으로 사라진 무민파파를 찾아 모험에 나선다. 배 타고 강 건너다 뱀과 마주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목적을 이루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는다. 그렇게 다시 삶을 시작하는 곳이 무민 골짜기다.


핀란드의 미술비평가 툴라 카르얄라이넨은 저서 '토베 얀손, 일과 사랑'에서 무민 골짜기에 대해 "아늑하고 안전한 환경으로 나타난다"며 "모험이 전개되는 배경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썼다. "무민 가족이 광활한 세상으로 나갔다가 평화로운 골짜기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늘 안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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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주를 이루는 모험 공간에는 미스터리와 따뜻함, 잔혹함이 모두 들어 있다. 얀손은 모든 어린이 책에 공포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파괴적 요소에 무의식적으로 끌리곤 한다고 봤다. 이들에게 최악의 공포는 어둠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여기에 안전한 느낌을 주는 요소가 가미되면 두려움이 상쇄되면서 유의미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얀손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가족 간 유대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배치했다.


무민 가족은 두 번째 책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에서도 재난을 극복한다. 그 뒤에는 피난을 가거나 숨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집필돼 얀손이 더는 자연재해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 듯하다. 그는 후속편에서 캐릭터 간 긴장을 다루며 정의와 도덕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 책에서 다루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가 직접 고민해본 문제들이었다.


주제의식의 변화 속에서 무민 골짜기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무민파파와 바다'에서 무민마마가 그리는 무민 골짜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무민파파는 평온한 나날이 지루해져 가족을 이끌고 먼바다 외딴섬으로 향한다. 낡고 허름한 등대에서 가족들은 서로 멀어진다. 무민트롤은 정신적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고, 무민파파는 작가이자 과학자로 바다 연구에 몰두한다. 무민마마는 온종일 무민 골짜기를 벽에 그린다. 그림 여기저기에 작은 무민마마가 착시처럼 존재한다. 무민트롤과 무민파파는 어떤 무민마마가 그려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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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문학 교수 보엘 웨스틴은 저서 '토베 얀손: 창작과 삶에 대한 욕망'에서 "무민마마는 꽃피는 무민 골짜기를 그리며 열망을 표현한다"고 썼다. "너무 강렬해 중국 예술가 오도현의 전설처럼 예술작품을 삶으로 가져와 예술가를 삼킬 것만 같다"고 했다. 오도현은 산수, 동식물 등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그린 8세기 예술가다. 직접 완성한 동굴 벽화 속으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무민마마가 그린 그림은 무민 골짜기에서 지닌 영향력을 보여준다. 그는 무민 골짜기 어디에나 있다. 무민 가족과 동행하는 미이는 "우리도 좀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무민마마는 "너희는 밖에 있었잖니"라고 답한다. 그는 이미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찾을 이는 자기 자신뿐이다.


무민트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벗어나자 무민마마는 라일락 덤불 옆에 잠든 자신을 그린다. 끊임없는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서 자유로워진 엄마의 모습이다. 그렇게 무민 골짜기는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안식처로….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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