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시신으로 덮인 마을 봤다"…노벨평화상 에티오피아에 전쟁 학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지역에서 살던 오예브 바리(55)는 전쟁 생존자다. 지난 9일(현지시간) 한밤중 총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그는 집 문을 쾅쾅 두드리는 군인들을 피해 자녀 4명과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숲길을 따라 도망쳤다. 수단 국경에 다다를 때까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칼로 무참히 학살되는 장면을 숨죽여 목격했다.

이웃국가인 수단에 도착해 한 난민 수용소에 머물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건물을 내어준 수단 사람들에게 감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입은 옷 그대로 도망치느라 아무것도 못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고 CNN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녀 6명을 둔 그는 남은 두 자녀와 남편의 생사를 아직 알지 못한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던 아비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지난 4일 티그라이 지방정부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에 전쟁을 선포한 이래로 에티오피아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지역에 사는 에티오피아 민간인 3만여명이 이웃국가 수단으로 전쟁을 피해 도망쳤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굶주리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끔찍한 전쟁 현장을 목격했다. 암하라 지역의 생존자인 가쇼우 말레다는 마을 주민 19명과 함께 탈출했지만, 4명만 살아남고 15명은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칼을 차고 암하라 지역에서 살해할 사람들을 찾아 순찰하는 티그라이 반군을 피해 빠져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난민은 지난 10일 “시신으로 뒤덮인 마을을 봤다”고 CNN에 말했다.

유엔은 이미 3만명이 수단 국경을 넘었으며, 지금도 난민들이 함다예트와 동부 루그디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함다예트에 마련된 난민수용소는 3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이미 2만명이 몰려들어 포화 상태다.

[관련 기사]에티오피아 내전 확대…노벨평화상 총리 리더십 도마

아프리카연합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양측에 휴전을 촉구했으나, 양측 모두 휴전에 응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티그라이 반군에게 72시간 내 항복하라고 최후 통첩했다. 아비 총리가 이끄는 연합군은 이날 티그라이 지역 수도인 메켈레로 진군을 선언하면서 민간인들에게 “스스로 살아남고 반군에서 탈출하라. 이후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남아 있는 민간인도 반군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에티오피아의 오랜 집권 세력이자 25만 민병대를 보유한 무장세력인 TPLF는 2018년 아비 총리와 함께 연립여당을 꾸렸지만, 오로모족 출신인 아비 총리 집권 후 티그라이족이 부패 혐의 등으로 수사받는 등 권력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아비 총리가 연립여당을 해체하고 단일여당을 만들려 하자 갈라섰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총선이 연기되자 지난 9월 독자 선거를 치르면서 아비 총리와 대립했다.

아비 총리는 2018년 이웃국가 에리트레아와 종전선언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TPLF를 ‘불법세력’으로 규정하고 정작 자국 내에서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도시 전체를 군사 목표로 삼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수전 라이스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도 트위터에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라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