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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노벨경제학 수상자 "한국, 전 세계적 '정부 위기'에 길잡이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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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KSP 콘퍼런스 기조연설

"코로나19는 정부의 위기이자 기회…韓 모범사례"

뉴스1

2020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콘퍼런스에 기조 연설자로 참석한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기획재정부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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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김혜지 기자 =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스테르 뒤플로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24일 "한국은 전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뒤플로 교수는 최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가리켜 "정부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르는 일대 기로"라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평가를 내놨다.

뒤플로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온라인 생중계된 '2020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콘퍼런스' 기조 연설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뒤플로 교수는 빈곤 문제에 대한 정책 해법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날 뒤플로 교수의 발표 주제는 '코로나 시대의 정책은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가'였다.

뒤플로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19는 그간에 지속된 정부의 정통성(legitimacy)에 관한 개념을 뒤흔들었다.

먼저 뒤플로 교수는 "모두 알다시피 정부 신뢰가 전 세계적으로 추락했다"며 "오늘날 정부를 신뢰한다고 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응답자 비율은 겨우 3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정부 신뢰도가 높지만은 않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는 정부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이런 상황을 바꾸고 있다.

마스크 착용과 사업장 폐쇄 등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조건들을 국민이 내면화 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팬데믹에 대비하려면 사용 여부도 불투명하고 이익도 남지 않는 사회기반시설에 큰 투자를 해야 한다. 이익을 위한 동기 부여가 전혀 없음에도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뒤플로 교수에 따르면 한국이 지금처럼 코로나19에 잘 대응할 수 있는 건 앞서 다른 팬데믹 극복 경험을 거친 정부의 대응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는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주체를 구제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부뿐이다.

반면 개인과 기업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줄면 일단 소비를 줄인다. 이렇게 되면 실업이 늘고 이것은 또다시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은 "필요한 자원을 소비하고 국민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역할이 있어야 잠식된다.

뒤플로 교수는 "그것이 가능한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뒤플로 교수는 "정부들의 입장에서는 성공이냐 실패냐의 일대 기로에 서 있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상황을 굉장히 성공적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이런 한국에서조차 일부 교회 등에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뒤플로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가 코로나19 대처에 성공해 위기에 수반된 희생의 필요성을 국민이 이해하게 된다. 이는 지금껏 악화됐던 정부 정통성이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뒤플로 교수는 "이것이 한국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전염병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돼 정부의 정통성 위기가 깊어진다.

뒤플로 교수는 "이렇게 되면 권력자에게 반발하는 것 이상의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전반적으로는 정부 신뢰가 약해지고 특히 정치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뒤플로 교수는 정부가 보유한 '역량'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 지금은 감염병 통제를 위해 거리두기 등 일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든 국가에서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를 막상 실현하려고 보니, 현실적으로는 사회 기반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뒤플로 교수는 이런 문제를 가리켜 정부 정책의 전달체계인 '배관' 문제(plumbing issue)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한국의 확진자 추적 앱은 성능이 상당히 좋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이는 집에 배관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또 배관 문제는 정부가 국민들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감내하게 할 수 있는지, 즉 행동 수용성(acceptability of behavior)에 관한 문제도 내포한다.

뒤플로 교수는 "따라서 배관의 중요성은 최소한의 한계점(marginal point)"이라며 "지난 수십년간 연구를 통해 빈곤 퇴치에 성공하는 핵심요소는 제대로 된 배관 구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코로나와의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배관 구축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었다"며 "이런 지식을 다른 나라와 공유함으로써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 정부에는 "이념(ideology) 보다는 역량(competence) 을, 권위적인 태도(posturing) 보다는 정확한 정보 수집과 전달에 집중하길" 권고했다. 그래야만 국민은 국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에 실패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나라에는 심각한 분열이 생긴다는 게 뒤플로 교수의 예상이다. 그는 "패자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없는 국가라면 심각한 분열과 대결의 늪에 빠져 정통성 회복의 기회를 오히려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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