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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아베가 낫다" 일본 여론은 왜 스가 총리에 야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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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이 지도자에 기대하는 인간적 면모와 달라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일보

매사에 꼼꼼하고 진지한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스가 총리가 전임자보다 일본 사회에서 인기가 없는 건 이미지 정치에 실패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지만, ‘정책보다 이미지’라는 불건전한 정치 전략이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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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낫다,” 스가 총리에 대한 야박한 뒷골목 인심

일본 사회가 새 총리를 맞이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새 지도자에 대한 뒷골목 인심이 영 야박하다. 벌써부터 새록새록 “전임이 낫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리니 하는 말이다. 스가 총리는 선거로 뽑힌 인물이 아닐 뿐 아니라, 전임 총리의 내각에서 오랫동안 중직을 수행해 왔다. 나날이 악화하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이렇다 할 대책을 못 내놓으니 여론이 좋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정책적인 면에서 딱히 이전과 다른 점이 없는데 “전임이 낫다”는 평가에는 쓴웃음을 짓게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상황은 전임 총리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정치가는 정치적 통찰력과 실천을 통해 평가받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본 시민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인간적인 면모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현직 총리에 대한 박한 평가를 일조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호탕함’의 나카소네 총리, ‘솔직함’의 고이즈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康弘, 1982~1987년 재임)씨는 60명이 넘는 일본 역대 총리 호감도 투표에서 늘 톱 3 안에 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일본 총리로서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져,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훤칠하게 큰 키의 호남형 용모에 호탕한 성격으로 소위 ‘일본인’의 내성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미국 보수 정권을 이끌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서로를 ‘론’, ‘야스’ 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개인 별장에서 그를 대접했던 일이 유명하다. 서양에서 ‘토끼집’이라는 야유를 들었던 소박한 일본식 가옥 (총리의 별장이 소박했다는 뜻은 아니다. 넓은 부지에 전용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로운 개인 별장이었지만 주 건물은 천장이 낮고 아담한 사이즈의 전통적 다다미 가옥 형태였다) 으로 천하의 미국 대통령을 안내하는 그의 모습이 일본인에게는 더없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기모노 겉옷을 걸치고 다다미 방에서 서투른 양반다리로 주저앉은 상황이며,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일본식으로 공손하게 술잔을 받든 장면 등은 서양 문화를 배워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일본 사회에 대단히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양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사 표현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의식하는 일본 사람들은 어색한 대인 관계야말로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자기의 장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도 있다. 나카소네 총리 특유의 자신만만하고 대담한 제스처는 이런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불식시켰다. 실제로 그가 총리를 지내던 시절 국제 무대에서 일본의 외교력이 급성장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67세의 나이에 수영복 차림으로 풀로 뛰어드는 모습을 매스 미디어에 공개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성격, 서양의 정치 지도자를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 속으로 이끄는 자신감은 일본인이 동경하고 기다린 지도자의 인간적 면모이기도 했다.

정치인의 인간적 면모를 논하자면 속시원한 언행과 파격적인 행보를 실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2001~2006년 재임)씨도 빼놓을 수 없다. 매사에 절차를 따지는 일본 사회의 성향과는 한참 동떨어진 이 정치가를 표현하는 한 단어는 ‘솔직함’ 이다.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거침없이 승부수를 던지는 그의 정치 스타일에는 ‘고이즈미 극장’ 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그는 거대 정당의 무대 뒤에서 벌어지던 파벌의 암투를 카메라 앞으로 끌고 나왔다. 마치 한판의 연극을 보는 듯한 극적인 정치 해법이 화제를 불러모았다. ‘고이즈미 칠드런’, ‘자객 공천’ 등 자극적인 용어가 더없이 어울렸던 그의 스타일은 매스 미디어를 입맛대로 다루는 포퓰리즘 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계파 뒤에서 세력을 다투는 음험한 파벌 정치에 지쳐있던 일본인들에게는 파격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는 그가 일본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인물로 보였다.

그는 총리 재임 때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 누구보다도 ‘탈원전’을 주장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원전을 추진하는 현 정부에 대해 주저없이 신랄한 비판을 퍼붓곤 한다. 정치가로서는 일관성이 없다는 눈총도 받을 만하지만, 사람들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그의 인간적 면모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듯하다. “실패하지 않는 인간은 재미가 없다”, “새로운 스트레스로 이전 스트레스를 잊는 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라는 등 위트있는 명언도 여럿 남겼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그의 언행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향적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인간적 매력이 재임 기간 내내 높았던 대중적 인기의 바탕이 되었다.

스가 총리의 스타일은 이런 선대 총리들과는 전혀 다르다. 국회 연설이나 매스 미디어를 상대하는 담화를 통해 파악하는 바, 그는 매사에 성실하고 꼼꼼하며 진지하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예의바르게 우회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이다. 좋게 말하면 일본 사회에 무리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성격이지만, 의외로 그 속에 일본인 스스로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숨어 있다. 성실함은 결단력 부족, 꼼꼼함은 신속함의 결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호탕함’의 나카소네, ‘솔직함’의 고이즈미가 일본 사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로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스가 총리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일본적’ 성향을 두루 갖춘 듯이 보이는 듯하다. 이렇다 할 인간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전임 아베 총리는 이웃 나라에서는 평가가 바닥을 치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의외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산적해도 그나마 ‘대외적으로 할 말은 하는 당당함’ 이라는 이미지가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도운 측면이 크다.

인간적 면모에 대한 평가가 늘 정치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아니다. 나카소네 총리는 총리 신분으로는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유능한 외교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무책임하게 이웃 나라와 불화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가라는 이미지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차남에게 지역구를 세습하는 ‘구악’을 답습했다. 수십년 동안 이렇다 할 정권 교체 없이 유일한 거대 정당에 기대어 온 일본 특유의 정치적 풍토에서 정책적 방향성에 대한 판단보다 정치가 개인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부정적으로 강화된 측면이 있다. 말이 좋아 인간적 면모이지, 매스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의존할 뿐이라고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미지 정치’에 대해 공존하는 기대와 우려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보다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가 점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적절한 타이밍에 소셜 미디어에 속시원하게 의견을 밝힐 줄도 알아야 하고,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해 우스갯소리를 받아 치는 센스와 유머 감각을 자랑할 필요도 있다. 심지어는 정치인이 국회에 출근하는 옷차림까지 화제가 되곤 하니, ‘이미지 정치’의 시대를 실감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요즘 같은 시절에, 정치가라면 100% 정치적인 주장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이상론일지도 모른다. 여론에 호소하고 여론을 기대야 하는 정치인에게 나름의 이미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정책보다 이미지’라는 불건전한 정치 전략이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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