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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트럼프발 '선거 쿠데타'가 실패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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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에밀리 머피 연방총무청(GSA) 청장에게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작업에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7일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사실상 확실해진지 16일 만이다. 바이든 인수위원회는 드디어 연방정부로부터 필요한 자금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물론 트위터를 통해 이런 조치가 선거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주장은 강력하게 계속하고, 계속 싸울 것이며,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연방총무청의 당선인 인정과 인수자금 지원이 사실상 선거 결과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24일엔 미국 백악관 비밀경호국(SS)이 트럼프 퇴임 이후 거주지에 대한 경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ABC 방송은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트럼프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재배치될 의향이 있는지 질문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아-미시간-펜실베니아-네바다, 줄줄이 바이든 승리 공식 인증

트럼프가 "부정 선거"를 주장하면서 인수인계 거부하다가 고집을 꺾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지아 등 기대를 걸었던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경합주에서도 결과를 뒤집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20일, 미시간은 23일,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는 24일에 지난 11월 3일 대선 결과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공식 인증했다.

트럼프 측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경합주 중 애리조나와 위스콘신만 아직 결과를 공식 인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주에서도 승패가 뒤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애리조나는 30일, 위스콘신은 12월 1일에 공식 인증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까지 바이든 승리를 인증하게 되면 바이든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306명이 된다. 트럼프는 232명이다.

미국은 주별로 주지사, 주 국무장관, 선거조사위원회 등이 개표 결과를 공식화하는 인증을 하도록 하고 있다. 50개 주지사와 워싱턴DC 시장이 인증된 개표 결과와 선거인단 명부를 12월 8일까지 의회로 보내면, 12월 14일(12월 둘째주 월요일) 선거인단이 모여 선거인단 투표를 한다. 선거인단 투표는 주별로 인증한 결과에 따라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캠프는 그동안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이 절차를 늦추려고 해왔다. 12월 8일까지 주별로 개표 결과를 인증하지 못하면 선거인단 투표가 불발되면서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회로 대통령 선출권이 넘어가게 된다. 하원의원 중 각 주별 대표를 뽑아서 투표를 하게 되면 공화당이 유리하기 때문에 트럼프의 재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합주에서 속속 선거 결과에 대한 인증이 발표되면서 선거인단 선거 불발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트럼프 캠프 측에서 각종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재까지 나온 결과가 '2승 30패'라고 CNN이 23일 보도했다. 이긴 지역들도 투표수가 적어 전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캠프도 애초부터 '객관적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소송에서 이겨서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트럼프 측은 주별 결과 인증 과정에서 브레이크를 걸 수 있기를 기대했다. 문제는 이런 '술수'가 통하기 위해선 주 정부의 투.개표 책임자들이 '공범'이 되어야 한다. 트럼프 캠프는 공화당 인사들이라면 당연히 '직업윤리'나 '민주주의 원칙'을 버리고 '정파적 이익'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버리고 '사익'을 취하는 것은 '트럼프 월드(트럼프와 그의 정치에 적극 동조하는 인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에서만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 측근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편에 선 공화당 인사들 때문에 트럼프가 획책하려던 '선거 쿠데타'는 사실상 실패했다.

조지아주 국무장관, 트럼프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압력 폭로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로는 28년 만에 조지아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됐다. 앞서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승리했다. 조지아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세가 강한 '레드 스테이트'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바이든이 이겼다. 미국 언론에서는 조지아주의 바이든 승리가 2018년 주지사 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한 스테이스 에이브럼스 등이 주도한 풀뿌리 유권자 운동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였던 에이브럼스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흑인, 라틴계, 아시안 등 유색인종과 젊은층을 대상으로 유권자 등록 운동을 벌였다. 그 덕분에 바이든은 간발(1만2000여표, 0.25%p)의 차이로 승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조지아는 표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수개표로 재검표까지 했지만 승패는 뒤바뀌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선거 실무를 책임지는 브래드 레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트럼프도 지난 13일 트윗을 통해 "무늬만 공화당원인 레펜스버거가 투표지 서명이 잘못됐는지 확인을 못 하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 나아가 그는 트럼프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으로부터 전화 압력까지 받았다. 그는 지난 16일 그레이엄이 전화를 걸어 '서명이 일치하지 않는 부재자 투표를 무효로 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폭로했다.

레펜스퍼거의 '폭로'로 민주당이 아니라 오히려 공화당이 '선거 부정'을 저지르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그레이엄은 다음날 자신이 애리조나, 네바다주 관리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우편투표 서명 확인과 관련해 문의했다고 실토하면서 압력이 아니라 문의 차원이었다고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애써야 했다.

조지아주는 결국 20일 재검표를 통해 바이든 승리를 재확인했다면서 선거 결과를 공식 인증했다.

트럼프, 미시간 주의회 의원들 백악관으로 불렀으나...

트럼프가 "미시간, 그 여자"라고 폄훼하는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가 있는 미시간주는 공화당이 다수인 주 의회를 통해 접근하려고 했다.

트럼프는 20일 공화당 소속 미시간 주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개표 인증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백악관 초청 이후 주의회 상원 원내대표와 하원의장은 오히려 "현재로서는 선거 결과를 뒤집을 정보가 없다"며 "미시간주 선거 인증 절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공화당 측은 또 선거조사위원회(canvassing board) 위원들을 통해서도 압력을 넣었다. 공화당원 2명, 민주당원 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멤버 중 트럼프 강성 지지자 1명은 끝까지 개표 결과 인증에 반대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23일 선거조사위원회는 바이든 승리로 집계된 개표 결과 인증 여부에 대한 표결 결과 3명이 찬성해 가결됐다. 공화당원 1명은 기권했다. NYT 팟캐스트에 따르면,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선거위원은 '반대'를 고집한 동료에게 '이건 우리의 일'이라며 직업윤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트럼프 측이 '쿠데타'를 모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선거제도가 의외로 촘촘하게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자신 뿐 아니라 '선거 불복 사태'를 주도했던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로저 스톤 등 소위 '트럼프 비선 캠프' 구성원 다수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다. 이들 눈에는 그 '구멍'이 너무 크게 보였고, 선거 제도는 충분히 돌파 가능한 장벽으로 여겨졌다.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던 트럼프의 16일 간의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이 허술한 제도가 큰 무리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든 '힘'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줬다. '민주주의 정신'과 이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년 기세등등했던 '트럼피즘'이 이마저 몰아내지는 못했다.

프레시안

▲ 트럼프 선거 승리를 주장하며 미시간 주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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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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