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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산업은행 '진짜로' 항공업 구조조정 급할까…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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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빅딜'이 25일 첫 장애물을 마주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오후 5시 강성부 펀드(KCGI)가 한진칼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문기일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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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GI(강성부펀드) 주주연합 측이 한진칼의 산업은행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신청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과 관련한 법원의 심문이 25일 열린다. 사진은 25일 인천국제공항의 아시아나 항공기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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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양대 국적항공사 통합은 시급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KCGI를 포함한 기존 주주와 시민단체·학자·여당 국회의원 등이 이번 딜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산은은 "지금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 계열주 일가의 건전경영을 감시하겠다"고 맞서왔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산은은 왜이리 항공 빅딜을 서두르는 걸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한다. 항공 빅딜 속 숨겨진 세 가지 '디테일'을 꼽아봤다.



①'긴급해서' 한다는 제3자유증, 대체 무엇이?



이번 딜의 최대 논란거리는 산은이 한진칼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점이다. 제3자유증은 기존 주주들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주주배정유상증자와 다르다. 제3자유증이 완료되면 산은(지분율 10.66%)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지분율은 37.34%에서 47.33%로 뛴다. 45.24% 였던 KCGI·반도건설·조현아 3자연합의 지분율은 40.4%로 줄어든다.

산은은 제3자유증을 실시하는 이유로 '긴급한 자금수요'를 들었다. 통상 제3자유증엔 1개월, 주주배정유증엔 2~3개월이 소요된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지난 19일 간담회서 "연내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부족과 자본확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규모 자금을 신속히 조달할 필요가 있었다"며 "주주배정유증은 2개월 이상 시간이 소요돼 긴급한 자금수요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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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현 수석부행장. 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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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시된 사실을 따져보면 이 말은 틀렸다. 이번 딜은 산은이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면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주주배정유증에 참여하고, 대한항공이 이를 아시아나항공 제3자유증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16일 공시된 각사의 유상증자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의 한진칼 유증대금 납입은 내달 2일, 한진칼이 대한항공에 유증대금을 넣는 건 내년 3월 12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에 유증대금을 납입하는 건 내년 6월 30일이다.

대한항공은 내년 3월에야 유증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마련한다. 산은이 주주배정유증을 추진해 한진칼에 대한항공 유증 자금을 마련해줘도 긴급자금 수요를 충족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긴급하다'는 대한한공에는 정작 내년 3월에 유증을 하면서 연내 한진칼에 제3자유증을 실시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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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증자 후 한진칼 지분 구조. 신재민 기자


왤까. 제3자유증과 주주배정유증이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은 따로 있다. 내년 3월 열릴 정기주주총회 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다. 산은이 제3자유증 참여를 통해 얻는 신주는 내달 22일 상장된다. 그럼 산은은 올해말 한진칼 주주명부 폐쇄 직전에 주주 명단에 올라, 내년 정기주총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주주배정유증을 한다면 내년 3~4월쯤 신주를 받기 때문에 내년 주총에선 의결권이 없다. 산은이 주장하는 긴급한 수요가 자금인지, 의결권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②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산은은 양대 항공사의 통합 말곤 항공업 구조조정 방안에 별다른 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9일 간담회서 "코로나 위기 직격탄으로 인해 전세계 항공운송업은 붕괴 위기에 처했고 우리 국적사도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며 "이제는 합쳐서 경쟁력 높이는 것만이 우리 국제항공운송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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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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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지난 8월 3일 간담회에선 달랐다. 이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지금의 먹구름(코로나19)이 걷히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미래를 꿈 꿔볼 수 있을만큼 좋은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는 정상화 가능한 기업이라고 생각을 해서, 현산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저희는 아시아나 정상화를 지원할 것이며 또 대한민국의 항공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그 선택은 옳은 선택"이라고도 언급했다.

지난 9월 11일에도 산은의 시각엔 변함이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에 2조4000억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이 결정된 그날 최 부행장은 "아시아나항공은 인건비 절감 등 최대한 자구노력 이행하고 있고 10월 말까지 1800억원을 절감했다"며 "기안기금이 지원되는 만큼 당장의 인력 등 부분은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 지금 산은과 한진그룹이 쓰는 '공멸'이나 '항공산업 붕괴'라는 단어는 두달 전만 해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는 백신 개발 소식도 없어 코로나19 확산의 불안감이 지금보다 더 컸을 때다.



③대한항공에 사외이사 추천, 한진칼 허위공시했나



지난 19일 산은 온라인 간담회 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사회자가 "한진칼에는 사외이사·감사위원 추천 조건을 부여했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는 그런 조건이 부여된 게 있냐"고 묻자 최 부행장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엔 사외이사에 대한 추천권이 없다. 일반적으로 대출하면서 산은이 사외이사를 추천해서 관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사회자가 다음 질문을 읽는데, 장내가 웅성거렸다. 이후 최 부행장은 사회자에게 "예전에? 지금 새로운 얘기입니까? 예전 이야기입니까?"라고 묻는다. 사회자가 "새로운 얘기"라고 하자 최 부행장은 "아 새로운 얘기, 제가 답변을 잘못 드렸다"라더니 "새로운 통합국적 항공사에는 저희가 사외이사 세 분을 파견하는 것으로, 추천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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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5일 인천국제공항의 아시아나 항공기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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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회장이 직접 나서 다시 이 부분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최 부행장하고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확실해 착오가 있는 거 같아 다시 말씀드린다"며 "이번 통합안에 의하면 앞으로 이 딜이 성사돼서 효력을 발생할 때 한진칼과 대한항공 양사 다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을 저희가 추천하는 걸로 약속 돼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간담회 이후 산은은 해당 내용이 담긴 '한진칼 및 계열주에 대한 견제장치' 문건을 예정에 없이 배포했다.

최 부행장이 말한 '새로운 이야기'와 '예전 이야기'란 무엇일까. 한진칼은 지난 16일 주요경영사항 공시를 통해 이른바 7대 의무 사항을 공개했다. 당시 한진칼은 '당사의 산은에 대한 의무' 조항의 첫 번째로 '한국산업은행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 위원 등 선임'을 발표했다. 산은이 대한항공에도 사외이사를 추천한다는 내용은 같은 날 한진칼이나 대한항공 공시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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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한진칼 '투자판단관련주요경영사항' 공시.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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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것이 의무조항이었다면 왜 공시에서 빠뜨렸는지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16일 공시된 사안은 17일 체결할 계약의 내용을 밝힌 것인데, 당시 공시 때 빠져있던 대한항공 사외이사 추천 관련 내용은 다음날 계약 체결 땐 포함돼있었다"며 "17일 계약을 하면서 포함된 해당 내용은 공시의무기한(5영업일)인 어제(24일) 대한항공 공시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KCGI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산은이 원래는 대한항공에 대한 사외이사 선임권을 넣지 않았는데 여론이 악화하니까 (항공업 구조조정이란 명분을 부각하기 위해) 허겁지겁 '있었다'고 하면서 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진칼·대한항공·산업은행 아무 데도 공시되지 않았던 내용이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한진칼이 정정 공시를 내지 않았다면 공시위반 이슈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절차적 완결성을 갖췄더라도 대한항공 지분이 없는 산은이 대한항공 이사회에 이사 추천권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산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진칼이 대한항공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진칼이 산은 추천 인물을 선임하도록 주총에 안건을 상정하고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투자합의가 돼있다"고 설명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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