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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중국, 왜 지금 왕이 부장을 한국·일본에 보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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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왕이 외교부장 “중-일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

한국에 와선 어떤 표현을 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겨레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4일 도쿄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 전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도쿄/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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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4일부터 한국과 일본을 순방 중입니다. 일정 첫날인 24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회담 후 만찬을 나눈 왕이 외교부장은 25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예방하고 한국으로 이동합니다. 한국에선 2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 및 오찬, 이후 문재인 대통령 예방이 예정돼 있습니다. 왕 부장의 이번 순방과 관련해선 내년 1월20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미국의 두 주요 동맹국인 한·일 양국을 찾아 이들의 지나친 ‘미국 쏠림’을 막고,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한-중, 중-일 관계는 중국의 국익에 고도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입장에선 어느 쪽에 더 관심이 많을까요. 이에 답하는 것은 쉽진 않지만, 중요도로 따지자면 ‘일본’, 민감도로 따지자면 ‘한국’이 아닐까 판단합니다. 왕이 부장의 동선을 봐도 첫 방문지가 일본, 두번째 방문지가 한국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2위와 3위에 해당합니다.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바다로 떨어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국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는 베이징의 ‘턱 밑’입니다. 더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2016~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국면 때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보복을 가했는지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양자 관계 중에서 가장 복잡미묘한 관계 중 하나인 중-일 관계에 대해 살펴볼까요?

외교는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교관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일본 외무성이 24일 정리해 발표한 ‘회담 기록’을 보면, 왕이 부장과 모테기 외무상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회담 초반에 나눈 것으로 파악됩니다.

먼저, 모테기 외무상이



-왕이 국무위원의 방문을 환영한다. 2월 이후 대면 회담을 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왕이 위원의 방일이 코로나19 감염확대로 인해 중단된 일-중 고위 당국자들이 왕래를 재개한 것이 되는 것과 동시에 스가 정권 발족 후 첫 일-중 간 고위급 대면 회담이 됐다.

-일-중의 안정적 관계는 지역·국제사회에 매우 중요하다. 또 함께 책임지는 대국으로서 코로나 대책, 기후 변동, 무역, 투자 등 국제사회가 직면해 있는 중요 과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공헌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중 관계 강화에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양국 간 지역과 국제사회에 있는 상호 관심사항에 대해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다시 한번 일본을 방문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오늘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첫 대면 회의를 실현한 것이 매우 의의가 있고 매우 유의미하다.

-새로운 정세 아래서 중-일 양쪽은 코로나19 대책 등 각 분야의 협력을 심화하고, 새 시대의 정세에 합치하는 중-일 관계의 구축을 착실히 추진해 지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적 발전을 촉진하는데 공헌할 필요가 있다.



라고 답합니다.

어찌보면, 선문답 같은 이 두 인물의 대화 내용 속에서 크게 다음 세 가지 내용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 중국과 일본 모두 안정적 양국 관계가 서로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에선 일본이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해 온 ‘중국 포위전략’에 무조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일본 역시 “미-중 대립이 격화하는 중에 전면적인 ‘미국 추종’으로선 일본의 국익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요미우리신문> 10월16일치 2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와 안전보장 문제가 결합된 과제에서는 동맹인 미국과 협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3만개 넘는 일본 기업이 사업하고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중국과 경제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경우 일본 경제에 대한 타격을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 국익에 따라 건건이 선별적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지난 9월12일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아시아판 나토(NATO)를 만들면 역내에 적과 우리 편을 나눌 수 있다. 미-중이 대립하는 가운데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면 어떻게 해도 반중 포위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외교가 목표로 하는 전략적 외교와 비교하면 옳지 않다”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일본은 현재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 4개국이 참여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것이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옛 소련에 하듯 중국을 노골적으로 포위하는 ‘반중 색채’를 띠는 것엔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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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5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둘째, 모테기 외무상은 ‘양국 간 지역과 국제사회에 있는 상호 관심사항에 대해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양국 간 상호 관심사항’은 올해 들어 더 심해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근해에 중국의 함선이 침범하는 문제, ‘국제사회의 상호 관심사항’은 홍콩 문제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 모테기 외무상은 홍콩 문제와 관련해 ‘1국가 2체제’ 약속을 지키라고 말했고,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지역·국제사회에 함께 공헌하기 위해선 자유, 인권의 존중과 법의 지배 같은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한두번 만남으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영토와 주권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이라는 말로 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터놓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셋째, 왕이 부장은 ‘새로운 정세 아래서’라는 묘한 표현을 써가며 “일-중 관계의 구축을 착실히 추진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왕이 부장이 언급한 ‘새로운 정세 아래서’란 말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국제 협조체제 속에서 강력한 ‘전략적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숨통을 죄는 ‘대중 압박’에 나설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를 예상한 왕이 부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중-일 양국은 협력을 계속해야 하고,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적 발전을 촉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는 미국에 지나치게 쏠려 중국과 쓸데 없이 마찰을 빚지 말아달라는 의미입니다.

이 발표문에 나와 있진 않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25일치 보도를 보면, 이날 왕이 부장은 모테기 외무상에게 “세계가 격동과 변혁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일의대수’(一衣帶水) 같은 장기적 협력 동반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의대수란 중국과 일본이 작은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매우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은 한-중 관계를 묘사할 때도 이따금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으로 인해 왕이 부장은 귀국 후 일정 기간 대기(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일부러 일본에 와서 ‘일의대수’의 파트너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미-중 대립 국면 아래서 일본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즉,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이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일본을 방문해 ‘간곡히’ 미국에 쏠린 대중정책을 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이 부장의 희망대로 중-일은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엔 여러 장벽이 존재합니다.

가장 큰 변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입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혼란을 걷어내고 태세를 정비한 미국이 내년 봄 이후 일본, 나아가 한국에 뭘 요구할지입니다. 이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중입니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들을 잘 규합해 중국 옥죄기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파’들이 있는 한편, 동맹국들에게 미-중 양자택일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온건파’도 있습니다. 미국 내 논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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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간 영토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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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변수는 양국 간의 치열한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센카쿠 열도입니다. 한국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금도 중-일은 센카쿠 열도를 놓고 치열한 대립 중입니다. 올 들어 24일까지 중국 함선이 센카쿠 열도 주변 접속수역(24해리 이내)을 침범한 것은 305일에 달합니다. 거의 매일 침범한 것입니다. 일본의 함선이 독도 접속수역을 매일처럼 침범한다 생각해 봅시다. 한국의 대일 여론이 어찌될까요.

바이든 당선자 쪽 역시 이런 중-일 관계의 가장 ‘약한 고리’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중국이 약했던 1972년 9월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국을 방문한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우: 양국은 대동(大同)을 추구하고 소이(小異)를 극복해야 한다.

다나카: 저우 총리의 얘기를 잘 이해하겠다.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는 작은 차이를 버리고 대동을 추구하자는 저우 총리의 생각에 동의한다. 센카쿠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 주변에 여러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저우: 그 문제는 이번에 얘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 그것을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석유가 나오니까 문제가 됐다. 석유가 안 나오면 대만도, 미국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때 봉합했던 중-일 간 ‘영토 문제’는 중국의 굴기가 시작된 2010년대 들어 재발했습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대립은 결국 2012년 12월 일본 우파의 상징인 아베 신조 2차 내각의 출범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베 정권은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전략에 편승하며, 미-일 동맹을 이전의 ‘지역 동맹’에서 활동 범위와 위상을 크게 높인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바이든 당선자는 지난 11일 스가 총리와 전화회담을 한 뒤 이 내용을 정리한 문서에서 “당선인은 일본 방위에 대한 그의 깊은 서약과 (미-일 안보조약) 5조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적었습니다. 미-일 얀보조약 5조란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에는 각자의 헌법규정에 따라 공동으로 대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센카쿠 열도에서 미-중 사이에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은 일본과 함께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일본에 “당신들의 ‘유일한 동맹국’은 미국”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 것이지요.

왕이 부장은 중-일 관계를 ‘일의대수’의 관계라 불렀습니다. 26일 한국에 건너와 한-중 관계에 대해선 어떤 표현을 사용할까요. 강경화 장관,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 때 어떤 용어를 써가며 무슨 얘기를 쏟아냈는지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치열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활로를 찾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외교란 실로 어렵고 복잡한 것입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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