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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감 80% 급감에 적자 릴레이…“내년 상반기가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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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항공제조산업]②

매출 40% 감소한 디엔엠항공, 20% 휴업조치

일부업체 200명 감소, 근로자 자진 이탈도

정부 지원에 숨만 쉬는 상황, 전향적 지원 시급

[사천(경남)=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코로나19 이전엔 미국 에어버스 A350 기종에 ‘윙 립’(Wing Rib·항공기 날개 뼈대 구조물)을 월 10개씩 공급해왔지만 이제는 절반 이상 납품량이 줄었어요. 1990년대부터 이쪽 일을 해왔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는데, 참 어렵네요.”

지난 24일 사천 항공산업단지에서 만난 황태부 디엔엠항공 대표는 어두컴컴한 자신의 공장 내부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평소였다면 저녁 늦게까지 많은 근로자들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해야하는 공장이지만 이날은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공장 내부를 보고 싶다’는 말에 황 대표가 직접 전등을 켜고 기자를 안내했지만, 그곳엔 아직 납품하지 못한 ‘윙 립’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곳에 근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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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디엔엠항공 공장내에 근로자 없이 항공기 날개 뼈대 구조물 ‘윙 립’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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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中企들 적자행렬…인력유지 더 시급

디엔엠항공은 항공기 부품 원자재 보관·관리·절단·치공구 설계 및 제작 등을 영위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협력사 중 하나다. 황 대표는 KAI 협력사들의 모임인 한국항공제조분과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때문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천 항공부품 중소기업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내 항공부품 중소기업들은 KAI를 통해 미국 에어버스, 보잉 등 해외 고객사들에게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해외 고객사들의 발주가 무기한 연기되고 있어 일감이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디엔엠항공도 올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60억원을 기록한 매출액도 올해 4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천 항공부품 중소기업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황 대표는 “1990년대부터 항공부품 쪽 일을 해왔지만, 이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며 “KAI가 자체 재고를 최대한 늘려 우리 협력사들에게 일감을 주곤 있지만 해외 고객사 물량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적자도 적자이지만, 당장 더 큰 걱정거리는 인력 문제다. 일감이 떨어진 협력사들은 자체 구조조정을 하거나, 대규모 휴업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항공제조분과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8월 3314명(20개사 기준)이었던 협력사 인력 규모는 한 달만에 265명이 줄었다. 휴업조치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업체는 최근 200명대 희망퇴직을 추진하기도 했다. A협력사의 경우 500명대였던 인력을 300명대로 줄였고, 300명대였던 B협력사도 최근 인력을 200명대로 축소했다.

황 대표는 “우리도 올 초 주 52시간 시행으로 인력을 20% 정도 늘렸는데, 최근 다시 20%를 휴업조치했다”며 “특근과 잔업이 없어지면서 스스로 그만두는 근로자들도 있다. 항공부품업체 입장에선 숙련공 확보가 중요한 만큼 인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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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부 디엔엠항공 대표가 사천공장에서 현지 부품업체들의 애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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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에 버티곤 있지만…정책 유연성 필요

이처럼 사천 항공부품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하자 정부와 KAI도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정부가 유급휴가훈련 지원사업을 통해 1000여명의 유휴인력 고용유지에 힘을 보태고 있고 경상남도는 KAI와 상생자금을 조성해 협력사 운전자금 수혈에 나서고 있다. 사천 항공부품업계의 상황이 더 악화되자 최근 지원폭을 더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협의회 한 관계자는 “정부와 KAI 지원으로 우리 협력사들이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코로나19 시대인만큼 유급휴가 훈련 지원 등의 정책과 민간 금융권의 지원이 좀 더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예컨대 운전자금 지원 한도가 기존에 10억원이었다면,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만큼 한도도 이에 맞게 20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보다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사천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보증기금 같은 보증기관도 더 전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부 규정에 너무 얽매여 적기에 지원을 못하는 상황이 있다”며 “일반 은행들도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지니 몸을 사리고 있다. 하물며 경남은행 같은 곳은 사천 협력사 대상 지원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항공부품업계는 내년 상반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잉과 에어버스 등 고객사들은 평소에 재고를 일정 부분 확보해놓지만, 최근 코로나19로 해당 재고마저 줄이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이면 내년 상반기가 국내 부품업계에 고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으로 내년 하반기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버티는 게 문제다. 협력사 지원에 나서고 있는 KAI 조차도 올 3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고, 지난해 55%에 달했던 민수사업 비중이 최근 37%까지 떨어지는 등 힘든 상황이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인만큼 정부와 은행권이 기존 규정과 실적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은 금융 관련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이후 턴어라운드될 가능성이 높은 항공제조산업인만큼 기존 규칙들을 좀 넘어서더라도 과감하게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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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한켠에 코로나19로 나가지 못한 재고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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