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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판사들에게 물었다…검찰 ‘사찰 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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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자체가 부적절” “불법성 단정 못해”

윤석열 총장 공개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체로 부정적

“공소유지 목적 외 사용 따져봐야” 위법성엔 의견 갈려

[경향신문]



경향신문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 부부장검사, 평검사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 청구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각각 낸 가운데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의 검찰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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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집행 정지 명령의 핵심 사유로 제시한 ‘재판부 불법사찰 의혹’ 문건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추 장관은 27일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불법사찰과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이날 “중요 사건 공판 수행과 관련한 지도의 참고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업무 참고용 자료로써 목적의 불법성 등이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당사자인 판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응답자 중에는 문건에 등장한 판사들도 포함됐다. 문건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불법사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검 감찰부가 강제수사에 착수한 이상 문건이 (판사에 대한) 수사자료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었는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A판사는 “이게 사찰이 아니면 뭐가 사찰이냐”면서 “삼권분립을 훼손한 불법사찰”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부가 사법부를 사찰한 것”이라며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고등법원 B판사는 “판사 입장에서 황당한 일이다. 징계감이든 아니든 관행이라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며 “법무부와 검찰이 나뉘어 싸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수도권 지방법원 C판사는 “적법한 권한과 절차 안에서 작성한 문서도 아니고 부적절한 것 같다”면서도 “총장의 직무집행 정지 사유까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 정권을 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D판사는 “불법사찰로 보기는 어렵다”며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된 만큼 검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판사들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생활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한 게 아니라 공개된 법정에서 진행된 재판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 사찰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는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판사들은 대체로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A판사는 27일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 미행을 한 것이 아니라 세평을 모아서 리스트를 만든 것”이라며 “검사가 판사를 사찰하고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 훼손, 헌정 문란”이라고 말했다. 한 사법기관 최고위 인사는 대검 측이 법조인대관에서 검색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문건을 작성했다는 해명을 두고 “법조인대관에는 ‘누가 누구의 처제이다’ ‘물의야기 법관이다’ 같은 내용은 안 나오지 않느냐”고 했다. 한 수도권 지방법원 C판사는 “검찰이 적법한 권한과 절차 안에서 작성한 문서도 아니고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건의 불법성 여부를 두고는 견해가 엇갈렸다. 법무부는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검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수도권 지방법원 E판사는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는 재판 가면 무죄”라며 “징계 사유로도 약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처럼 뒤지듯 수사하면 무조건 기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수도권 지방법원 F판사도 “왜 검사가 세평을 모으냐는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G판사는 “현재 상황에서는 아주 큰 위법 사안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며 “도청, 미행, 계좌추적 이런 것들이 위법한데 법조인대관, 공판검사의 말에서 정보를 수집했다면 위법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강제수사를 통해 불법성을 따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D판사는 “강제수사가 착수된 이상 문건이 (판사에 대한) 수사자료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었는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유지 목적이었다면 공판검사가 작성했어야 하는데, 수사권을 가진 대검이 정보를 수집한 게 문제”라며 “사법농단 사건 역시 인사권을 가진 법원행정처가 정보를 수집해 문제가 됐다”고 했다. 또 “검찰이 수사권을 통해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판사들이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사법농단 사건 재판부의 한 판사 세평에 “행정처 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적힌 점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자료를 활용해 문건을 작성했다는 점이 (수사에서) 밝혀진다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했다.

G판사는“어느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 이 판사가 우리법연구회여서 그렇다는 식으로 검사가 판사 비난을 기자들을 통해서 하지 않느냐”며 “이런 상황에 문건이 이용됐다면 위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D판사는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법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법원도 검찰 말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게 됐다”며 “검사도 판사가 법을 넓게 해석하느냐, 좁게 해석하느냐 등 성향을 분석해야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대검에 판결 연구관 같은 보직을 만들어판사의 사생활 같은 약점이 아니라 판사 생각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F판사는 “미국은 연방 법관들의 신상, 주요 판결 등이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며 “판사들은 항상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했다.

유설희·정희완·허진무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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