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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추미애-윤석열’ 사태 뒤에 숨은 또 하나의 코드 ‘정치의 사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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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53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

통치의 영역 좁아지며 정치적 리더십 약화

장관-총장 대립도 ‘법대로’ 해결할 수밖에

사법적 판단과 정치적 리더십 조화 이뤄야


한겨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집행 정지를 명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추미애 장관은 무슨 근거로 이런 처분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검사징계법입니다. 검사징계법을 보면, 검사는 검찰청법 제43조를 위반했을 때,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했을 때,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때 징계합니다.

검찰청법 43조는 ‘정치운동 등의 금지’ 조항입니다. 검사는 재직 중 ‘국회 또는 지방의회의 의원이 되는 일’,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일’, ‘금전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일’, ‘법무부 장관의 허가 없이 보수를 받는 직무에 종사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검사징계법으로 검찰총장도 징계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검찰총장도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1957년 제정된 검사징계법에 “검찰총장인 검사에 대한 징계는 법무부 장관이 청구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있습니다. 검사징계법 제정 이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징계를 청구한 적이 없었을 뿐이지, 법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의미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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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징계를 청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무직 공무원인 법무부 장관과 특정직 공무원인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충직한 부하들이었습니다. 늘 ‘같은 편’이었습니다. 검찰총장을 지내고 법무부 장관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혹시라도 장관과 총장의 의견이 다를 때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뒤에서 ‘조용히’ 정리했습니다. 장관과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인 이른바 ‘통치’의 영역이었습니다. 통치의 영역에서 검찰총장 임기제 같은 법률 조항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랬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처음으로 갈등이 노골화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였습니다. 강금실 천정배 장관은 검사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은 대통령과 검찰 조직 전체의 충돌로 확산했습니다. 그리고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검찰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한겨레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요? 노무현 정부에서 벌어졌던 일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장관 인사 절차에 대한 도전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감사를 빌미로 정부 기관에 대해 전방위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자체에 칼을 들이대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검찰이 처벌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온당한 일일까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법대로’라는 무기를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검찰 조직을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노무현 정부는 속절없이 당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실패의 경험이 반면교사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는 정치적으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거친 방식입니다. 우선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행정법원의 결정이나 판결로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방식입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쪽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금 추미애 장관을 편들고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기서 발을 빼면 검찰에 밀리기 때문입니다. 검찰에 밀리면 정권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그래도 추미애 장관이니까 윤석열 총장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망나니에는 망나니 방식으로 맞서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입니다. 이 난리가 났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도대체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과 이른바 보수 신문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겁한 대통령’이나 ‘결자해지’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책임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정권 내부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했습니다. 반대한 사람들이 내세운 이유는 윤석열 총장이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반대 의견이 옳았던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정치적인 이유로 임기제 검찰총장을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둘째, 우선순위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그로 인한 경제 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급히 처리해야 할 국정 현안에서 뒷순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정권과 검찰의 갈등 국면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할 때이지 대통령이 검찰과 전면전에 나설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셋째, 현실론입니다.

대통령이 나설 수 없는 국면으로 이미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 징계를 청구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뜻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추미애 장관 보고를 받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 정지를 상상이나 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정도로 무모하고 배짱이 있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추미애 장관이 검사징계법 절차에 따라 윤석열 총장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집행을 정지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말릴 수 있는 명분이 없었을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법대로’ 하겠다는데 아마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인 유전자보다 법조인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한겨레>에서 청와대를 출입하는 이완 기자가 11월26일 치 신문에 대통령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쓴 기사가 있습니다. 기사의 첫 줄이 청와대 관계자의 코멘트입니다.

“대통령이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내놓으란 얘기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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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뜻과 관계없이 추미애 장관은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했고, 윤석열 총장은 행정법원에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수 없는 국면으로 이미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결자해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난감한 처지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고 떠드는 사람은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그러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악의를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금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부를 초월한 ‘국가 원수’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른바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제왕적 대통령은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의 총재를 대통령이 겸하고, 사법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던 독재 정권 및 권위주의 정권에서 존재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실천했습니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 총재나 대표가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여당 총재나 대표를 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제왕적 대통령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행사했습니다. 집권 여당 국회의원 공천에 관여했습니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받아서 사용했습니다.

과거에는 ‘통치권’이라는 명분으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 사법부는 대통령의 이런 ‘통치 행위’를 명백한 불법으로 단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현직 대통령의 ’통치 행위’인 것 같아도 퇴임 이후에 검찰이 문제 삼고 사법부가 불법으로 단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일을 문재인 대통령이 하려고 할까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 대목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왜소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불행한 일입니다. 대통령의 모든 권한 행사에 사법적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거칠게 표현하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주요 쟁점을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행정수도 이전의 절차적 정당성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는데도 헌법재판소가 개입하여 입법부의 결정과 정부 정책을 무효화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은 민주주의 원리를 명백히 위배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은 정치인들의 협상과 타협과 합의였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합의, 1990년 3당 합당, 1997년 디제이피(DJP) 연대와 내각제 합의,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합의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합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검찰에 고소하고 사법 처리를 요구합니다. 선거가 끝나도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검찰과 법원이 정치인들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사법의 힘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불러오는 폐해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여야 관계뿐만 아니라, 정권 내부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 청와대, 총리실의 조정으로 행정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행정기관 간의 다툼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꽤 많습니다.

이번 ’추미애-윤석열’의 ‘법대로’ 싸움도 크게 보면 그런 현상의 일종입니다.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명한 직무집행 정지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행정법원 판사가 결정해 주는 장면이 정상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법(法)만이 아닙니다. 가치와 도덕과 규범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법은 규범의 최소치입니다. 정치에서 ‘법대로’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충돌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두 개의 고비가 있습니다.

첫째, 11월30일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 총장의 직무정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어떻게 결정할지가 중요합니다. 법원이 윤석열 총장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윤석열 총장은 업무에 복귀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귀하지 못합니다. 법원이 결정을 미룰 수도 있습니다.

둘째, 행정법원의 결정과 별도로 12월2일 징계위원회가 열립니다. 징계위원회가 해임, 면직, 정직, 감봉을 의결하면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징계를 집행합니다. 대통령은 ‘집행권자’이기 때문에 징계위원회의 의결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징계위원회가 징계를 의결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징계를 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고 후임 검찰총장이 임명되더라도 서울행정법원에서 한참 뒤에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후임 검찰총장 임명을 취소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복직시켜야 할까요?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사법국가(司法國家)’가 됩니다. 대통령보다 법원이 더 막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리더십이 다소 손상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분간 행정법원의 결정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를 지켜볼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권은 그 뒤에야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과 사법적 절차 준수를 도대체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까요? 앞으로 누구든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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