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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영업부장님 AI개발자 되셨네…54세에 20년 주특기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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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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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분당사옥 정보보안단 보안 인공지능(AI) 솔루션 개발팀에 최근 50대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강민구 부장(54·사진)이 그 주인공인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AI와는 거리가 먼 '영업맨'이었다. 강 부장의 새 명함엔 기존의 '강남서부광역본부 컨설팅센터 영업부장' 직책은 사라지고, 'AI개발자'가 새겨졌다.

KT가 지난 3월부터 가동한 '제1기 AI인재 육성 프로젝트'가 전환점이 됐다. AI 전문가를 밖에서 수혈하기보다 KT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내 직원을 중급 수준 이상의 AI 인재로 키우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AI 인재 육성 프로젝트는 AI 개발자 코스와 현장 AI 인력 코스로 나뉜다. 현재 업무를 하면서 AI 교육을 받는 현장 AI 인력 코스와 달리 AI 개발자 코스는 현업에서 배제되고 AI 공부에만 집중해야 한다. 수료하면 AI 부서 배치라는 직무전환을 보장한다. 직무전환을 전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다. KT는 나이, 전공, 직무 등 지원자에 관한 모든 제한을 없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강 부장은 380여 명 지원자 중 '최고령자'였다.

AI개발자가 되려면 엄청난 학습량을 소화해야 한다. 특히 AI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서 개발자가 된 뒤엔 더 많은 공부가 필수다. 사서 고생은 하지 말자가 요즘 트렌드인데 왜 '늦깎이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을까.

"AI를 공부해 두면 10년 뒤 은퇴해서도 현역처럼 나만의 기술로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재작년부터 틈틈이 AI와 빅데이터 관련 인터넷 강의를 듣고 코딩을 해봤죠. 사내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생초보는 아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20대 중반 KT 기술지원연구소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개발자로 일했다. 그러나 30대에 기술관리, 40대는 기업 영업을 하며 20년 넘게 개발과 담을 쌓았기에 나이 50세를 넘어 '공부 신공'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AI알고리즘 등 강의가 빡빡하게 이어졌다. 수업 땐 항상 맨 앞줄에 앉았고, 수업이 끝나면 몇시간째 복습하느라 수강생 중 가장 늦게 퇴근했다. 8월부터 12주 동안 진행된 실전 과제에선 데이터를 활용해 AI 기반 원내비(KT 내비게이션 앱) 도착 시간 예측모델을 개발했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지 체크하기도 했다"며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AI 모델 점수가 안 나오면 머리에 땀이 나면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짜릿함이 있어요." 강 부장이 만든 AI 모델은 최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연내 원내비에 적용될 예정이다.

아들뻘 되는 20·30대 직원들과 한 팀으로 동고동락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 부장은 "젊은 팀원들이 '부장님 말씀'이라고 여길까봐 걱정돼서 잘 듣는 역할에 집중했다"며 "속 얘기도 꺼내곤 했는데 서로 집안 얘기도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지난달 말 보안 AI·솔루션 개발팀에 배치됐다. 보안관제시스템에 대한 해킹을 비롯해 외부 공격을 미리 탐지하는 AI 모델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는 50대 청춘, 60대 현역을 꿈꾸고 있다. "20대 신입사원일 때 느꼈던 두근거림, 열정 같은 감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AI를 활용해 KT의 AI 대표 브랜드인 '지니'의 뒤를 잇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체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경험과 연륜을 더하면 똑똑한 AI를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강 부장은 인터뷰 말미에 재야의 고수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내년엔 '꽃중년' AI 개발자가 더 많이 나올 것 같다는 것이다. KT는 지난 27일 제2기 AI 교육생 모집 공고를 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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