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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효리 이어 BTS와 블핑까지···中 애국주의가 한류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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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나는 차이나]

중국의 반복적인 한류 스타 때리기

배후엔 유별난 중국 애국주의 존재

자의적인 애국주의 활용이 더 문제

처음엔 효리였다. 예명으로 ‘마오’가 어떨까 하고 던진 말이 문제였다. 중국이 발끈했다. 건국의 주역 마오쩌둥(毛澤東)을 한낱 오락 소재로 치부한 게 아니냐며 들끓었다. 8월의 일이었다.

10월 초엔 방탄소년단(BTS)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으로 한·미가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중국 네티즌이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했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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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방탄소년단의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에 중국 네티즌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환구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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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엔 블랙핑크를 때렸다. 짙은 화장을 하고 맨손으로 아기 판다를 만져 판다 건강에 위험을 줬다며 비난했다.

중국의 어이없는 한류 스타 때리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다음 달엔 또 누가 중국의 표적이 될지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고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내 한류 스타 때리기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네티즌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이어 애국주의를 파는 신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총대를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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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은 블랙핑크가 아기 판다를 맨손으로 만져 판다의 건강을 위협했다고 비난하며 문제를 삼았다. [중국 웨이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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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에 있지만, 대중적 인기는 더 높다. 독자가 많고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환구시보는 논란을 부추기며 문제를 중국 제도권 언론의 틀로 몰아간다. 이어 환구시보의 영자지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가 가세한다. 그러면 중국의 한류 때리기는 영어 버전으로 국제적으로 소개된다.

사실 중국의 다른 나라 때리기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만이 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중국 언론엔 중국이 어떤 나라를 어떻게 혼내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가장 많이 얻어맞는 나라는 호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기원과 관련, 중국을 겨냥한 독립적인 조사를 주장한 게 죄(?)다. 호주산 와인과 석탄, 목재 등 각 품목의 중국 수출이 줄줄이 불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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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기원과 관련해 중국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주장했다가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후 호주산 와인과 설탕, 목재 등 각 품목의 중국 수출이 줄줄이 불허되고 있다. [글로벌타임스=연합뉴스]


국가가 이럴진대 하물며 기업이랴. 지난해 베르사체와 구찌 등의 글로벌 브랜드 모두 중국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홍콩을 중국과 분리해 표기했다가 중국에서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된 것이다.

미 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 단장 대릴 모레이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NBA 중국 중계가 취소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중국에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배후에 도사린 중국의 ‘애국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국주의는 물론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한데 중국의 애국주의는 유별나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그렇다. 왜일까?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애국주의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40여 년 만에 맞은 1991년의 소련 해체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회주의 국가의 맏형 소련의 붕괴로 중국 또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유행하며 중국 역시 곧 사라질 운명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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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중국의 애국주의 강조는 더욱 강화됐다. 중국의 존엄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행위나 발언을 한 상대에겐 가차없는 비판이 가해진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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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후 필사적으로 소련 해체의 경험을 연구했다. 그리고 교훈을 도출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소련의 비극은 미국에 군사력이 뒤져서 일어난 게 아니다.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경제는 문제가 있었지만 버틸 만했다. 직접적인 붕괴 요인은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였나. 중국은 소련의 최대 문제가 위아래 모두 제도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에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구의 집요한 이데올로기 공세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로 대체되며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사회주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서도 더는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 자칫 쪼개질 운명이다. 그래서 나온 게 애국주의다.

시진핑은 지난 2012년 11월 중국의 1인자인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줄곧 “소련이 왜 무너졌나”를 외치고 다녔다. 소련의 전철을 답습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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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에 있는 환구시보는 중국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기사를 주로 게재하며 급성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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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에서 유난히 애국주의가 강조된 배경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존엄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일이 생기면 상대가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고 벌떼같이 일어서 공격한다.

이런 애국주의 정서에 호소하며 급성장한 게 환구시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을 주로 때리다가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THAAD) 체계 배치 이후엔 한국도 타깃이 됐다. 한류 스타 때리기는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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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국주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진핑은 사회주의에 대한 노선 자신, 이론 자신, 제도 자신, 문화 자신 등 4대 자신을 역설한다. 중국인이 사회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문화적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데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중국의 일부 젊은 세대가 못마땅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중국의 애국주의 표적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 농구 스타 야오밍(姚明)이 맨손으로 판다를 만졌을 때는 아무 일 없다가 블랙핑크가 만지자 난리를 피우는 경우처럼 애국주의 활용이 무척이나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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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의 농구스타 야오밍도 새끼 판다를 맨손으로 만진 적이 있다며 과거 사진을 찾아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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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애국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중국 민심을 공산당 지지로 이끄는 데 효과는 있겠지만, 중국 내 애국주의 고양과 반비례해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매력은 사라진다. 매력을 잃으면 더는 대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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