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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최유식의 온차이나] 오바마가 본 중국 “미국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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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출간 회고록에 에피소드 전해...

“미국에 대한 도전은 수십년 뒤의 일, 그것도 미국이 전략적 실수해야 가능”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난주 중화권 언론의 화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이었습니다. 11월17일 출판된 이후 1주일 만에 북미 지역에서 170만부나 팔렸다죠.

총 768쪽 분량인 이 책은 2권으로 계획된 회고록의 1권으로 2011년5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 첫 중국 방문을 포함해 중국에 관한 에피소드가 꽤 나온다고 해요.

중국은 오바마 재임기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섭니다. G2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 기억하시죠.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오바마를 공격했습니다. 무능하고 유약한 대응으로 중국이 일자리 수백만개를 뺏아가도록 방치했다는 거죠. 대중 무역전쟁도 이런 논리선상에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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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서점가에 나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회고록 '약속의 땅'.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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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리는 후진타오, 노련한 원자바오

회고록에서 가장 재밌는 건 역시 인물평입니다. 2009년 시작된 첫 4년 임기에 그의 파트너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였죠.

오바마 전 대통령은 후 주석을 “아무 개성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후 주석과의 회담은 졸리는 일이었다. 무슨 주제든 그는 두꺼운 말씀 자료를 찾아서 그대로 읽었다. 내가 말할 때도 문건을 뒤적이고 있다가 보좌관을 쳐다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묻곤 했다.”

한번은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려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해요. 회담장인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거대한 기둥이 즐비한 대형 건축물입니다. 이 큰 건물이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완공된 걸 알고, “그 업자 이름 좀 알려달라”고 농담을 한 거죠. 그런데 돌아온 건 후 주석의 멍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시간 절약을 위해 우리 서로 문건만 주고받고 한가할 때 읽어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썼어요.

반대로 원자바오 총리는 인상이 꽤 깊었던 모양입니다.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썼는데, 사전에 준비된 원고 없이 말했고 임기응변에도 능숙한 노련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어요. 중국 정상들은 전반적으로 말이 길어서 회담 중에 자주 말을 끊어야 했다고도 했습니다.

◇ 방중 도중 겪은 치열한 첩보전

방중 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첩보전도 공개했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기 직전 방중단은 모든 개인 전자기기를 놔두고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 모든 통화는 도청될 것이라는 경고도 들었다고 해요. 그는 “대선 때도 캠프 컴퓨터가 중국 해커에게 해킹당한 일이 있었다”며 “중국이 멀리 있는 휴대폰을 도청장치로 전환시킬 능력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도청을 막기 위해 스위트룸 가운데에 도청 방지 장치가 설치된 푸른 색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일부 수행원은 도촬을 의식해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죠.

게리 로크 상무장관은 행사 참석을 위해 나가다가 놔두고 온 물건이 있어 호텔방에 다시 돌아왔는데, 침대를 정리하는 호텔 종업원 옆에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 두 명이 서서 책상 위에 있는 문건을 뒤적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크 상무장관이 “뭐하는 거냐”고 묻자,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옆을 지나쳐 방을 나갔다고 해요.

◇ 싱가포르 같은 상하이...’딘 마틴' 닮은 상하이 시장

방중 첫날 도착한 상하이도 깊은 인상을 남긴 듯 합니다.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를 ‘싱가포르보다 더 싱가포르 같은 곳’이라고 썼지요.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에서 점심을 했는데, 이 도시 시장이 우리 방중단과 미중 양국 비즈니스 리더 사이를 오가며 갖은 수고를 다했다. 맞춤 정장에 세련된 풍모를 갖춘 공산당 내에서 전도유망한 인물인데, 어쩐지 배우 딘 마틴을 연상시켰다. 내 수행비서 레지 러브에겐 패션쇼 모델처럼 크고 늘씬한 몸매에 물흐르는듯한 흰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종업원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공산당원들이 이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라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배우 딘 마틴을 떠올렸다는 상하이 시장은 지금은 공산당 권력 서열 7위의 상무위원인 한정 부총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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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방문한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9년 11월16일 상하이 과학기술관에서 열린 상하이 지역 대학생 대상 타운홀 미팅에서 참석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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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에피소드들이 재밌긴 하지만, 역시 가장 알고 싶은 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국을 보는 시각이겠죠.

그는 2009년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당시 중국 대표단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건 수십년 뒤(decades away)의 일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또 “아마도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미국의 전략적 실수의 결과일 것”이라고도 했어요. 한마디로 ‘미국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겁니다.

원자바오 총리와 가진 회담을 회상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죠. 중국인들은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갖겠다고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그걸 불필요한 골칫거리로 여긴다는 겁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상황은 좀 다른 것같은데,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시 주석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시 주석 집권 이전인 2011년까지만 다뤄서일 것입니다. 시 주석에 대한 그의 평가는 회고록 2권을 기다려 봐야할 것같네요.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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