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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법원 “두 차례 헬기사격…계엄군 자위권 발동 주장은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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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광주 가며 “말 조심해 이놈아”…판결 뒤 차 바꿔 상경판사

“5·18 큰 책임에도 성찰·사과 없고…용서도 못 받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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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왔던 차량에 계란 세례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30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회고록 형사재판’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전두환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다른 차를 타고 법원을 빠져나가자 사죄를 요구하며 빈 차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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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광주 시내에서 헬기에 의한 사격을 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피고인의 자위권 발동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30일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89)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5·18 당시 ‘헬기사격’ 여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쟁점”이라고도 했다.

1997년 대법원은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이 도청진압작전을 펴면서 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것을 ‘내란목적살인’으로 판단했는데도 전씨 등은 그동안 “자위권 발동으로 인한 정당방위”라는 주장을 펴 왔다. 신군부의 주장은 군이 광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시위를 진압하던 중 시위가 격화돼 부득이 자위권을 발동해 무력을 동원했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대량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이들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재판부는 “(헬기사격은)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군이 오히려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고 밝혔다.

법원이 이날 5·18 당시 헬기사격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계엄군의 발포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라는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재판부는 5·18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전씨가 반성 없이 5·18을 부정하려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1시간여 동안 재판부의 선고가 이어지는 동안 전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개를 떨구며 졸았다. 유죄가 확실해지자 옆에 앉은 부인 이순자씨는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지만 전씨는 판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눈을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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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2차례 헬기사격 인정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조 신부는 자신의 허위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라고 비난해 기소됐다. 조 신부는 1988년 국회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등에서 수차례 “5월21일 오후 광주천 상공에서 무장헬기가 사격하는 것을 봤다”고 일관되게 진술해 왔다.

5·18 당시 실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 여부는 전씨의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사자명예훼손의 경우 허위사실을 적시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5·18 당시 5월21일과 27일 계엄군의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헬기에서는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되지 않았다”는 전씨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신부가 목격하고 증언한 5월21일 헬기사격에 대해 재판부는 “조 신부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5·18 때 광주에 출동했던 일부 헬기 조종사가 “광주공원에 위협사격을 하라”는 무전을 들었고, 헬기에 공급됐던 탄약이 일부 소모된 점도 증거로 인정됐다. 5·18 이후 작성된 전투병과사령부의 ‘광주소요사태분석 교훈집’에 ‘의명(依命) 공중 화력 제공’이나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 등의 기록이 있는 점도 인용됐다.

5월27일 헬기사격의 유력한 근거는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0층에서 발견된 177개의 탄흔에 대해 “헬기가 호버링 상태(정지비행)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는 감정서를 냈다.

재판부는 “도청진압작전 때 UH-IH 헬기에서 엄호사격을 했다”는 계엄군 진술 등을 토대로 “5월27일 UH-IH 헬기에 거치된 M60 기관총으로 전일빌딩으로 사격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전씨는 1시간 내내 꾸벅꾸벅

이날 오전 8시42분쯤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선 전씨는 낮 12시27분쯤 광주지법에 도착했다. 자택을 나서던 전씨는 일부 시위대가 “전두환을 법정구속하라”라고 외치자 “말 조심해 이놈아”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법정에서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피고인석에 앉은 전씨는 재판 초기에는 비교적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는 재판장이 신분을 확인한 뒤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하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고 공판이 길어지면서 전씨는 이내 졸기 시작했다.

고소인 측 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상식과 역사적 정의를 확인한 사필귀정의 판결이다. 5·18 당시 헬기사격이 법원 판결로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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