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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직권남용 칼잡이' 尹의 아이러니, 구속한 자들의 방패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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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국내 최고 직권남용 이론가 이완규로 秋 맞대응

중앙일보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출근 모습. 당시 윤 총장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직권남용이란 법리였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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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의 최전방 공격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권남용의 수비수가 돼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 사문화됐던 직권남용이란 법리를 적폐청산 수사에서 되살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까지 구속했던 그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격에 직권남용 피고인의 방어논리를 꺼냈다.

윤 총장은 이른바 '판사 문건' 작성 지시와 관련해 추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의뢰를 당한 상태다. 지난달 30일 열린 직무배제 집행정지 소송과 향후 본안 소송, 1일과 2일 예정된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징계위원회 역시 이 판사 문건과 윤 총장의 직권남용 성립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직권남용 저격수' 이완규 선임한 尹



윤 총장이 처한 상황은 윤 총장이 선택한 변호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윤 총장과 같은 검찰 출신으로 그의 변호를 맡게 된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국내 최고의 직권남용 이론가로 꼽힌다. 문제는 이 변호사가 직권남용에 있어 윤 총장과 생각이 다른 폐지론자에 가깝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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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의 변호를 맡은 이완규 변호사. 그는 국내 직권남용의 최고 이론가 중 한명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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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지난해 5월 한국범죄방지재단의 학술강연회에서 '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인정돼 정권 교체기의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윤 총장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로 윤 총장을 '석열이'라 부를 만큼 가깝다. 하지만 윤 총장이 직권남용이란 전가의 보도로 칼을 휘두른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 입장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의 행정소송과 형사고발 모두 직권남용에 대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을 것"이라며 "이완규의 선임은 그에 대한 윤 총장의 대비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총장의 부탁을 받고 변호를 맡게됐다. 윤 총장에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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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윤 총장에 대한 감찰 결과와 관련해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방침을 밝히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같은 날 윤 총장이 퇴근하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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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핵심은 판사 문건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를 지시하며 제시한 혐의는 총 6가지다. ▶감찰 방해 ▶언론사 사주 접촉 ▶채널A 수사 방해 등도 있지만 핵심은 추 장관이 '불법사찰'이라 주장하며 형사고발까지 한 판사 문건이다. 서로간의 주장이 엇갈리는 다른 징계사유와 달리 이 문제는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란 객관적 자료가 남아있다.

문건 중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수사자료를 활용한 듯한 '16년도 물의야기 법관 포함'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도 쟁점이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 문건의 불법성은 따져봐야 하지만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며 판사의 감정을 건드린 측면도 있어 윤 총장 소송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말했다.

윤 총장 측은 직무배제 취소 소송과 징계위, 형사고발 대응에서 모두 판사 문건은 불법 사찰이 아니란 입장을 취할 예정이다. 공판 검사의 공소유지를 돕는 정당한 직무행위였으며, 오히려 추 장관의 직무배제가 위법하다는 것이다. 반면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지시는 해당 문건이 작성된 대검 정보정책관실의 직무범위를 벗어난 직무배제 사유임은 물론 명백한 불법행위라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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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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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불법사찰 1심 판결의 법리



이런 불법사찰에 대한 법리 다툼은 국정원을 동원한 불법사찰 혐의로 2018년 무죄와 유죄를 동시에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1심 판결문에도 자세히 나와있다. 우 전 수석의 기소를 결정한 것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총장이었다.

우 전 수석은 자신을 감찰했던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사찰한 혐의에선 유죄를,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한국 과학기술단체총연합 등에 대한 사찰 혐의엔 무죄를 받았다.

그의 1심 재판장이었던 김연학 부장판사는 선고 당시 불법 사찰의 기준으로 ▶위법한 목적을 갖고 ▶통상의 업무와 직무범위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때를 제시했다. 이는 현재 윤 총장 측이 판사 문건은 불법사찰이 아님을 반박하는 근거(적법한 목적, 직무범위 내 활동, 1회성 작성)이기도 하다.

김 재판장은 우 전 수석의 무죄 이유로 "단순히 직무수행 행위가 위법하다고 평가돼 상급 공무원의 지시행위를 직권남용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상사(상급 공무원)의 직무의 권한 범위▶상사의 지시 경위 ▶해당 업무를 한 상사와 부하 직원의 위법성 인식 여부와 위법성 정도 ▶직무수행으로 인한 결과 ▶통상적 업무수행의 모습 등을 종합해 직권남용의 성립여부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을 기소했던 윤 총장과 가까운 특수부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법리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윤 총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법원의 판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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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3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정지 처분에 대한 효력 집행정지 심문기일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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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 판례와 이탄희의 반박



윤 총장 측은 불법사찰의 성립 여부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고였던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사건과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사건 판례도 참고하고 있다. 해당 판례에선 ▶직무범위를 벗어나 ▶평소의 동향을 감시할 목적으로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미행, 탐문, 채집으로 수집한 경우를 불법사찰이라 규정한다. 판사와 같은 공인에 대한 사찰도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할 경우에만 예외가 적용됐다.

추 장관과 민주당 측에선 판사 문건의 '불법성' 여부에 앞서 해당 문건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페이스북에 "징계와 형사처벌,국가배상은 각기 다르다"며 "수사정보정책관실을 통한 판사사찰은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불법이다. 명백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윤 총장의 직권남용 성립 여부와, 현재 진행 중인 직무배제 소송의 성립 요건은 별개라는 주장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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