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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바이든 정권도 ‘중국 손보기’ 움직임, 짙어지는 美 vs 中 ‘이념 충돌’의 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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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양상을 놓고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을 연상하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전통 강호인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 아테네를 상대로 일으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유래한 말이다. 국제정치 학계에선 21세기 ‘미중 대립 구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미중 대립 관계는 마치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시대적 충돌을 묘하게 닮았다.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기술, 군사 등 사실상 전방위 영역에서 대중국 공세를 펼쳤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기치를 앞세워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했던 트럼프 정권이 역대 행정부와 차원이 다른 대중국 압박에 나섰던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한동안 미국 경제는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강성했다. 그러다 1980년에는 31%로 떨어지더니 현재는 24%까지 쪼그라든 상태다. 반면 1980년 세계 시장의 2%에 불과했던 중국 경제는 지난해 16%로 몸집을 불리며 미국을 빠르게 뒤쫓고 있다. 2040년엔 중국 경제가 30% 이상을 차지해 미국 경제(11%)를 완전히 따돌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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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시대가 열리면서 미중 갈등 국면에 변화가 생길지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중국 안팎에선 바이든 정권도 트럼프 행정부와 같이 ‘중국 손보기’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중 디커플링 기류가 한층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이든은 오랫동안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한 외교문제 전문가이자 미국의 대중국 포용정책 지지자였다. 2001년 8월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은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은 “중국이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환영하며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 인권과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규범을 잘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방중을 계기로 2001년 말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승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든은 오늘날 중국이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는 데 일조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대중국 관세 보복에 나설 때도 바이든은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중국과의 협력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대중국 인식은 대선 레이스가 진행된 최근 1년 새 크게 변했다. 마치 트럼프의 강경론이 연상될 정도로 말이다. 바이든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중국을 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며 “중국을 가만히 둔다면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계속 훔쳐갈 것이고, 정부 보조금을 통한 불공정 게임을 일삼으며 미래 기술과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트럼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바이든은 “동맹과의 관계 회복을 꾀하고 연합전선을 앞세워 중국의 잘못된 행동과 인권침해 행위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와 서방 언론들은 바이든 시대의 미중 관계를 분야별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무역 분야는 트럼프 때와 비교해 갈등 양상이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전쟁을 통해 거세게 중국을 압박했다면 바이든 정권에서는 무역 분쟁의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불안 요인들은 여전히 많다. 바이든 정권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이 탈(脫)중국 가속화와 미국 중심의 가치사슬 재편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 재협상을 추진할 경우 미중 간 의견 충돌이 또 다른 형태의 무역전쟁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상 분야의 경우 바이든 정권은 다자무역체제 및 우방국과의 협력 기치를 내세우며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중국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관련 국가들을 중심으로 우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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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중전회에서는 경제적으로는 ‘쌍순환’발전 전략이 채택됐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1월 13일 장쑤성 양저우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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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패권을 놓고 미중 경쟁 양상은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차기 행정부도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중국을 압박할 것”이라며 “특히 조 바이든 당선인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5세대 통신(5G) 등 첨단기술 육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 문제에 대해선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강경하다. 바이든은 중국의 약한 고리로 꼽히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100만 신장 위구르인을 노동 교화소에 수감한 폭력배(thug)’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홍콩과 대만 문제도 바이든의 관심사다. 올해 5월 중국이 어수선한 코로나19 정국을 틈 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자 바이든은 곧바로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또 바이든은 지난 1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자 축하 인사를 건네며 대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요컨대 인권·홍콩·대만 등 이슈에서 미중 간 긴장은 트럼프 때보다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변화 대응 등과 같은 영역에서는 미중 간 협력의 장이 열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상관없이 중국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 대선을 앞두고 개최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에서 중국 지도부는 내수 확대와 첨단기술 강국을 목표로 한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경제 전략인 ‘쌍순환(雙循環·이중 순환)’을 통해 자립경제 구축에 속도를 내기로 결정했다. 또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실현을 위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미국 경제를 추월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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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순환은 내수 위주의 자립경제에 집중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조성하는 한편 대외 경제도 함께 발전시킨다는 경제 전략이다. 중국 지도부는 “과학 자립과 혁신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삼고 세계 기술 전선과 경제 전장에서 혁신 체계를 보완해 과학기술 강국 건설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 영역에서도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심해지자 기술 자립을 통해 대미 의존도를 빠르게 낮추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2035년이 되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이번 중국 지도부의 장기 발전 계획 논의는 사실상 미국과의 장기적 패권 경쟁을 대비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은 대미관계 재정립과 군사 강국을 향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신형국제관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협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 주석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만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의미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하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숙원 사업인 일대일로로 발현되며 중국식 세계화를 제시한다. 중국은 또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자국의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 출신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경제 발전 덕분에 중국은 만만치 않은 정치적 군사적 경쟁자로 변해가고 있다”며 “수십 년 안에 미중 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고 내다봤다.

미국 외교의 거두로 통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11월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개최한 ‘신경제 포럼(Bloomberg New Economy Forum)’에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세계는 1차 대전과 유사한 재앙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미중 군사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와해된 양국 간 대화 라인을 신속하게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기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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