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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뉴스분석]“'中 김치 세계 표준' 황당 주장은 일종의 동북공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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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치 생산 수출 급증하면서

파오차이 분류에 김치 넣어려는 것

"제조공정부터 발효단계 등 차이 커"

중앙일보

한국의 김치. 자료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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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김치 동북공정’이라 할 만 하다. 지난달 29일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중국 시장 관리ㆍ감독 전문 매체인 중국시장감관보를 인용해 중국이 주도해 김치 산업의 6개 식품 국제 표준을 제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제 여론은 중국의 이같은 주장을 무색케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파오차이의 표준에 김치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한 데 이어, 영국 BBC도 30일(현지시간)‘김치, 한중 문화 갈등을 발효하다’ 제하 기사를 통해 “중국이 한국 전통 음식인 김치의 제조법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오보’(false report)에 한국이 퇴짜를 놨다”고 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인 세계김치연구소는 30일 “최근 중국의 한 매체에서 자국의 절임 채소 음식인 ‘파오차이(泡菜)’에 대한 산업표준이 김치산업 국제표준으로 제정됐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김치와 파오차이는 제조공정부터 발효단계 등 차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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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김치 수입 동향.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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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한궈 파오차이’ 유행 때문?



중국이 이런 느닷없는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국 내 김치 산업과 수요가 커지자 이를 본격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김치 시장은 2003년 이후 점점 커지고 있다. 2003년 사스(SARS) 바이러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한국은 이를 피해가자 김치가 ‘사스 특효약’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치의 상업성이 부각되면서 중국 산둥성을 중심으로 김치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한국으로의 수출 증가로 중국 내 김치 생산량이 늘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 내 김치 생산량 대부분을 한국으로 수출했지만, 현재는 중국인들도 많이 먹는 음식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정은 세계김치연구소 전략기획본부장은 “중국인은 김치를 그냥 파오차이가 아니라 ‘한궈(한국) 파오차이’라고도 많이 부른다”며 “3년 전 방문한 중국 파오차이 공장에서 만드는 김치를 시식했는데 한국 김치와 비슷한 맛이라 놀랐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중국이 김치 생산은 물론 수출까지 늘면서 김치의 정체성을 자국 파오차이 문화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라며 "한국 입장에선 또다른 '동북공정'처럼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사실 중국산 김치의 ‘진격’은 놀랍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산 김치의 제조 단가는 kg당 863원으로 국산 김치(2872원)와 비교해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다. 중국산 김치 수입은 2003년 전년 대비 20배 이상 늘며 크게 증가했다. 이후 점차 늘어 지난해에는 무려 30만t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김치를 먹는 또 다른 국가인 일본 시장 점유율도 높여가고 있다. 조 본부장은 “과거에는 일본에서 중국산 김치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에 시장 점유율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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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파오차이 비교 [자료 세계김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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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오차이는 2차 발효 없는 ‘피클’



그렇다면 파오차이는 대체 뭘까.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파오차이는 김치라기보다는 채소 절임인 피클(pickles)에 가깝다. 김치의 고유 특성인 ‘2차 발효’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채소절임은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계절변화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발달할 수 있다. 실제로 김치 외에도 파오차이ㆍ쯔게모노(일본)ㆍ사우어크라우트(독일)ㆍ피클 등 다양한 절임식품들이 있다.

이때 김치가 이들과 구분되는 점은 바로 2차 발효에 있다. 위의 식품이 채소를 소금 또는 식초에 절여 먹는 반면, 김치는 1차로 원료채소(배추ㆍ무 등)를 소금에 절인 뒤 여기에 고춧가루ㆍ파ㆍ마늘ㆍ생강 등 다양한 부재료로 버무려 2차로 발효시킨 음식이다.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이처럼 생채소를 1, 2차로 나눠 발효시키는 식품은 전 세계적으로 김치가 유일하다. 이 두 번의 발효를 거치면 원재료에는 존재하지 않던 각종 영양기능성 물질들과 유산균이 생긴다. 다른 나라의 절임 채소류와 달리 김치가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도 ‘김치(KIMCHI)’로 최종 국제 규격을 인정받았다.

최학종 세계김치연구소장 직무대행은 “최근 김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중국 매체의 근거 없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것 같다”며 “앞으로 김치의 우수성을 보다 과학적으로 규명해 전 세계적으로 알림으로써 더 이상 이와 같은 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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