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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오철우의 과학풍경] 우주를 ‘듣는’ 천문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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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우주의 장관을 눈으로만 느끼는 걸로 부족한 걸까? 누군가는 별자리를 보며 저마다 다른 선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밤하늘의 반짝임은 잔잔한 실로폰으로, 때로는 강렬한 비트로 울려 퍼진다. 맷 루소라는 천체물리학자는 몇 해 전 테드(TED) 강연에서, 39광년 떨어진 트라피스트-1 행성계를 이룬 일곱 행성 가족의 조화로운 궤도 운동을 역동적 음악으로 바꾸어 보여주었다.(tinyurl.com/y5ybfoyv)

최근에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찬드라 관측위성과 허블 우주망원경에서 얻은 영상과 데이터를 음악으로 바꾸어 들려주는 천문학 대중화 사업을 하고 있다.(chandra.si.edu/photo/2020/sonify) 우주를 청각이라는 다른 감각으로도 느껴보고, 특히 시각장애인도 간접으로나마 우주를 느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음악은 우주에서 감흥을 얻고 악상을 떠올려 작곡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천체의 밝기나 위치, 전자기파 주파수에 대응하는 음정, 음량, 리듬을 사용해 실제 관측한 데이터나 영상을 음악으로 번역하는 기법을 쓴다. 우주는 일종의 악보인 셈이다. 고요한 은하는 실로폰과 피아노의 잔잔한 선율로 명상 음악처럼 들려온다. 초신성 폭발 이후에 잔해로 남은 천체인 카시오페이아 에이(A)는 여전히 장엄함을 들려준다.

이런 작업의 바탕에 천문학자와 음악인들로 이뤄진 예술집단이 있다. “우주의 리듬과 화음을 음악과 음향으로 번역해주는 과학예술 프로젝트”인데 달, 행성, 별, 은하의 음악작품을 이들의 사이트(system-sounds.com)에서 들을 수 있다.

사실 천문학 연구의 많은 부분은 시각에 의존한다. 그런데 왜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지? 이런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 시각장애인 천문학자가 있다. 미국 천문학자 완다 디아스머세드는 20대 대학원생 시절에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좌절을 딛고서 우주 관측 데이터를 소리로 바꾸어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척해 천문학 박사가 됐다. 그는 ‘시각장애 천문학자는 어떻게 별을 듣는 법을 찾아냈나’라는 주제의 테드 강연에서, 지금 천문학이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은 무시해서 놓치는 발견도 있다며 음향분석법이 비장애인 연구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tinyurl.com/y4kpftsv) 그는 그래프 데이터를 소리로 분석해 항성 천체를 연구한 최초의 시각장애인 천문학자가 됐다.

아쉽게도 요즘엔 빛 공해와 소음 탓에 도시에서 총총한 밤하늘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다사다난한 한 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마음에 울릴지 모를 우주의 선율에 귀 기울여보는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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