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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최갑수의맛깊은인생] 벌써 그리운 장흥에서의 풍성하고 맛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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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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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에 다녀왔다. 매생이로 유명한 곳이다. 내전마을이라는 곳에서 질 좋은 매생이가 난다. 인근 고흥과 강진의 그것보다 올이 훨씬 가늘고 부드럽다. 장흥 사람들은 매생이국을 먹을 때 젓가락을 국그릇에 꽂곤 한다. “젓가락이 쓰러지면 안 됩니다”라고 장흥을 안내한 지인은 말했다. 매생이가 그만큼 많이 들었다는 뜻이다.

점심으로 매생이떡국을 먹었고 저녁으로는 ‘장흥삼합’를 먹었다. 장흥쇠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를 불판에 올려놓고 구워 먹는데, 관자 위에 살짝 구운 쇠고기 한 점과 표고버섯을 올려 한입에 먹으면 고기의 진한 육향과 키조개의 부드러운 식감이 어우러지고 그 위에 표고버섯의 감칠맛이 폭설처럼 내린다. 이 재료가 모두 장흥의 특산물로 장흥군은 이를 장흥삼합이라고 이름 붙여 홍보하고 있다. 한입에 장흥의 산 들 바다를 맛보는 셈이다.

지방으로 취재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맛있는 아침을 먹기가 쉽지 않다. 주로 해장국을 먹는데 그것도 매일 먹다 보니 조금 물린다. 이번 장흥 취재에서는 아주 맛있는 아침상을 받았다. 토요시장에 자리한 백반집이었다. 장을 찾는 장흥 현지 사람들이 아침을 먹는 곳이다.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면 닫는다. 지인이 백반집에 전화를 걸더니만 “내일 아침은 김치찌개랍니다”라고 했다. 매일 반찬과 국이 바뀐다고 했다.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 네 개가 있는 실내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과 이른 아침 일을 끝내고 찾은 환경과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반찬통에서 알아서 반찬을 꺼내 접시에 덜었다. 밥을 더 먹고 싶은 사람들은 보온밥통 뚜껑을 열고 밥을 더 담았는데, 자기 집인 듯 자연스러웠다. 밥통 문을 열 때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식당에 퍼졌다.

반찬은 열두 가지나 깔렸다. 시금치나물, 표고버섯나물, 마늘종무침, 가지볶음, 멸치볶음, 데친 꼬막 등등. 김치찌개에는 뭉텅뭉텅 썬 돼지고기가 수북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런 밥상이 1인분에 고작 6000원이었다. “서울이면 만 원 받아도 아무 말 못 하겠다”고 일행 중 누가 말했다. 전날 지인이 “계란말이 하나 시켜 보소. 한 열 알은 까서 만들 거요”라고 한 말이 생각나 계란말이도 하나 시켰다. 만 원이었다.

흰 접시에 담긴 계란말이는 벽돌만큼 컸다. 계란 반 판은 넣은 것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겠구나”하며 밥그릇 위로 한 점을 가져갔다. 배가 불렀고 마음은 더 불렀다.

장흥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저녁, 라디오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수도권은 2단계로 격상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장흥에서의 풍성한 시간들이 벌써 그리웠다. 언제쯤 코로나가 물러가고 우리는 편하게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을까. 이 겨울, 조금 있으면 남포마을에서 향긋한 굴이 날 텐데 말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맛있는 시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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