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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장경덕 칼럼] 2021년도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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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작년 이맘때 우리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재앙의 전조를 보지 못했다. 봤더라도 중국 관리들이 감염병을 은폐하고, 미국 대통령이 그것을 감기 취급하고, 글로벌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각국의 전례 없는 재정·통화 살포로 자산 가격이 폭등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세상이 뒤집힐 줄 몰랐을 터이므로 서울 강남 아파트나 글로벌 바이오 주식을 사러 달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시나리오는 한국은행의 예측 모델에도 당연히 없었다. 1년 전 한은은 올해 한국 경제 파이가 2.3% 불어날 것으로 봤다. 실제로는 1.1% 쪼그라들 전망이다. 올해 24만개 늘어나리라던 일자리는 되레 20만개 줄어들 것이다. 15세 이상 인구는 해마다 20만명 안팎씩 늘지만 취업자는 후년에 가서야 작년 수준을 회복한다. 팬데믹은 일자리 정부에도 재앙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다. 지구촌에서 이 감염병에 목숨을 잃은 이들만 벌써 145만명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감염병 탓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2025년까지 28조달러 줄어든다. 한국 경제의 17배나 되는 부가가치가 바이러스에 파괴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식과 집과 비트코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이 악몽 같은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더 견딜 만한 시간이리라.

팬데믹의 역설은 그뿐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사태를 안정시킨 중국은 감염병이 처음 발생했고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개인의 자유 못지않게 공동체의 안전이 절박한 때에는 스트롱맨의 국가주의가 득세하기 십상이다. 방역 전선에서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흔히 가려진다. 경제의 구조적인 부실을 키워온 정부의 과오는 유례없는 위기 대책으로 덮여버린다.

다행히 인류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몇십 년이 걸리던 백신 개발은 1년이 채 안돼 성과를 내고 있다. 암흑의 겨울이 지나면 바이러스는 조금씩 퇴조할 것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상화의 길에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패닉의 순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찾아올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경제는 그동안 구조개혁이 지연된 덕분에 팬데믹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한국 산업구조는 아직 1인당 소득 3만달러 수준에 걸맞게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옮아가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미국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높고 노동시장 유연성이 낮아 실업대란을 늦출 수 있었다.

위기가 덜 절박했던 만큼 구조개혁에 대한 저항도 심했다. 예컨대 디지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인 원격의료 도입은 더디기만 하다. 기업 부실은 덮여 있었다. 위기 전부터 늘어나고 있던 좀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거의 전무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정책적 보호막이 걷힐 때 엄청난 출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최악의 위기가 지나가고 경제가 정상화되면 되레 자산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빚더미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과도한 자산 거품은 꺼질 수밖에 없다. 질서 있는 출구전략을 세워놓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또 다른 충격이 덮쳐올 것이다.

올해 초 나는 2020년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되찾는 조용한 혁명의 해가 됐으면 하고 소망했다. 팬데믹으로 그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2021년도 패닉이후의 통증으로 잔인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남긴 트라우마는 좋은 역설도 불러올 수 있다. 심리학자 피터 러빈은 "트라우마의 역설은 그것이 파괴의 힘을 갖는 동시에 변화와 소생의 힘도 갖는다는 점"이라고 하지 않았나.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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