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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람사전]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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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철 카피라이터


평생 하는 것. 죽는 날까지 하는 것. 우리 모두 서로 다른 후회로 일생을 살지만 마지막 후회는 다 같다. 후회에 시간 쓰지 말 걸. 후회를 후회한다.

『사람사전』은 ‘후회’를 이렇게 풀었다. 조카 둘이 집에 놀러왔다. 남자는 비행기를 타고 여자는 방송작가를 한다. 와인을 마셨다. 맥주 마시듯 마셨다. 얼마 후 나는 후퇴해 안방으로 들어가 뻗었고 새벽녘 우리 집 와인냉장고는 깡그리 털렸다.

삼촌 선물! 조카들이 들고 온 건 연필이었다. 아, 또 연필. 오래 전 내 책 날개에 쓴 후회 막심한 작가소개 글이 다시 떠올랐다. 한영애의 퇴폐적 창법을 좋아하고, 노무현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좋아하고, 박주영의 헐렁한 옷소매를 좋아하고, 이세돌의 바둑판 노려보는 깊은 눈을 좋아하고, 예쁜 연필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중앙일보

사람사전 12/2


몽블랑 만년필 받는 것을 좋아하고. 포르쉐 자동차 받는 것을 좋아하고. 이렇게 썼어야 했다. 지금 내 작업실엔 죽는 날까지 써도 다 쓰지 못할 연필이 가득. 연필 주위엔 후회가 가득. 그러나 후회가 연필을 만년필로 자동차로 바꿔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후회에 쓸 시간을 연필에 쓴다. 작업실 연필을 몽땅 몽당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연필을 쥔다. 연필은 글이 되고, 글은 책이 되고, 책은 돈이 되고, 돈은 만년필이 되고 자동차가 될 것이다.

우리 목은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180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돌아보는 근육은 없다. 후회는 등 뒤에 두고 앞으로.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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