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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권혁재의 사람사진] 서정춘이라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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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재의 사람사진 / 서정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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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한 팔순 시집’

서정춘 시인이 보내온 우편 봉투 귀퉁이에 적힌 글귀다.

봉투를 열어보니 『하류』라는 제목의 시집이 들었다.

이는 그의 오십 두 해 시인 인생에 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

‘하류가 좋다 / 멀리 보고 오래 참고 끝까지 가는 거다’가 다다.

고작 두 줄이지만 어떻게 지어진 두 줄인지 짐작되었다.

2016년 그가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를 냈을 때 처음 만났다.

장사익 노래 ‘여행’을 통해서 서 시인의 시를 듣는다며 인사를 건넸다.

“4년에 걸쳐 80번가량 고쳐 쓴 게 그것이오.”라고 그가 답했다.

원제가 ‘죽편(竹篇) 1-여행’인데 시 전문은 이렇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처음엔 25행이었던 것을 4년간 80여 번 고쳐 남긴 다섯 행이다.

이 다섯 행에 홀딱 반한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노랫말로 삼은 게다.

“참, 환장하지. 재주가 없나 봐. 일종의 결벽증 환자 같아. 병이야 병”

스스로 병이라며 웃는 얼굴에 팬 주름, 얄궂게도 하회탈을 닮아 있었다.

사실 『죽편(竹篇)』은 서 시인이 등단한 지 28년 만에 낸 시집이다.

당시 문단에선 “죽편 읽어 봤는가?”라는 인사말이 나돌 정도였다.

자르고 잘라 오롯한 ‘서정춘 표’ 시를 문인들이 먼저 알아본 게다.

2018년엔 그의 등단 50주년 기념문집이 나왔다.

문집 이름이 『서정춘이라는 詩人』이다.

각계 문인들이 서 시인을 두고 시와 산문으로 쓴 것을 모아서 엮은 문집이다.

기획된 게 아니라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쓴 시 43편, 산문 22편을 엮은 책이다.

살아있는 시인을 두고 이리도 많은 문인이 오래도록 시와 산문을 쓴 일,

이 사실만으로도 『서정춘이라는 詩人』은 ‘짜잔한 시인’이 아닐 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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